[책과 길] 비슷한 이름에 끌린다! 뇌과학이 밝힌 결혼의 진실… ‘새로운 무의식’

입력 2013-01-17 18:18


새로운 무의식/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까치

저자가 책의 보증수표인 경우가 있다. 이 책을 쓴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가 그렇다. 그는 물리학자로서의 업적도 적지 않지만, 베스트셀러 과학 작가로 더 유명하다.

통계와 확률에 관한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 스티븐 호킹과 함께 우주에 대해 쓴 ‘위대한 설계’가 그의 저작물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저자의 트레이드마크인 난해한 과학주제를 명쾌하고 쉽게, 그리고 재치 있게 설명하는 솜씨는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주제는 무의식이다. 보통 ‘무의식’ 하면 지그문트 프로이트나 칼 구스타프 융으로 대표되는 정신분석을 연상하게 된다. 저자는 그러나 이들이 사용한 자유연상, 꿈의 해석 등의 기법은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책은 뇌과학으로서의 무의식을 다루는데, 이것이 가능한 건 1990년대에 등장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라는 신기술 덕분이다. fMRI는 MRI(자기공명영상)와 비슷한데, 뇌를 대상으로 한다는 게 다르다. 이 기술 덕분에 과학자들은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를 테면 당신이 뇌 활동 데이터를 분석하면 당신이 지금 어떤 장면을 보고 있는지도 훤히 맞출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정신분석이 아닌 뇌과학이 새롭게 밝혀낸 무의식, 즉 책의 제목대로 ‘새로운 무의식’은 우리의 감정이나 판단, 기억들이 오류투성이였다고 말한다. 사랑 같은 감정조차도 의식 아래의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 드러난 것이다.

뇌과학이 밝혀낸 결혼의 진실 한 가지. 당신은 남편과 왜 결혼했을까. 잘 생긴 얼굴, 부드러운 미소, 아니면 복부의 식스팩? 그런데 무의식을 과학적으로 조사했더니, 이름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다섯 가지 성(姓)을 조사했더니, 스미스는 스미스끼리, 존슨은 존슨끼리, 즉 같은 성끼리 결혼한 사례가 훨씬 많았다. 자신과 비슷한 특질을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편향 덕분인데, 이런 편향은 뇌의 배측선조체(背側線條體·등쪽 줄무늬체) 영역에서 관장한다.

진통제인 타이레놀을 먹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과학에 근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타이레놀을 복용한 피실험자들의 뇌를 fMRI로 촬영하자, 사회적 배제와 연관된 뇌 영역의 활동이 줄어든 게 확인된 것이다. 타이레놀은 물리적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 고통도 줄여주고 있었던 걸 과거에는 기분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바야흐로 뇌과학이 밝혀낸 무의식은 개인의 금융투자 활동, 기업의 판매전략까지 수정해야 할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와인은 비쌀수록 맛있고, 정크 푸드를 메뉴판이 아닌 실물로 제시했을 때 소비자들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생긴다는 것이 무의식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비싼 가격이 붙은 와인일수록 그 맛을 볼 때 쾌락적 경험과 관련이 있는 안와전두엽피질의 활동이 증가한 것이다. 발음이 어려운 회사보다 발음이 쉬운 회사에 더 많이 투자를 하는 경향도 있다.

무의식의 뇌과학은 범죄수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억도 믿을 게 못된다고 뇌과학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것과 접수하는 것은 일치하지 않으며, 특히 눈이 움직이는 동안에는 인식에 공백이 생긴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딱딱한 과학 얘기인데도 속도감 있게 읽히는 건 이야기를 전개하는 그의 테크닉에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정보를 무미건조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사례를 제시해 이야기를 읽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무의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나치 강제수용소 경험,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 등 내밀한 가족사까지 스스럼없이 풀어놓기도 한다. 그래서 무색무취하지 않고 군데군데 사람 냄새가 나는 과학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김명남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