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유대인 박해 부른 거짓 문서 어떻게 만들어졌나

입력 2013-01-17 18:30


프라하의 묘지(전2권)/움베르토 에코/열린책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움베르토 에코(81·사진)가 2010년 발표한 신작 소설. 나치에 의해 유대인 박해의 근거로 사용된 허위문서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져나갔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19세기, 프라하의 묘지에 모인 유대인 랍비들의 발언을 모은 이 문서는 유대인이 세계 지배를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유대인에 대한 어마어마한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에코는 이 증오의 배후자로 소설 속 유일한 가공인물인 프랑스군 장교 출신 시모네 시모니니를 내세운다.

책을 펼치면 프랑스 파리 모베르 광장 주변의 빈민굴에서 한 노인이 일기를 쓰고 있다. 바로 시모니니이다. “내 어린 시절은 유대인들의 유령 때문에 음울해지고 말았다”(1권 16쪽)에서 드러나듯 시모니니의 고백은 그가 얼마나 전방위적인 적개심을 가진 사람이며 인종 차별적인 인간인가를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에코가 시모니니의 고백을 통해 밝히려 한 것은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적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를 폭로하기 위해 작가는 시모니니로 하여금 당대의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만나게 한다. 예컨대 1894년 프랑스 포병부대 근무 중 군사기밀을 적군에게 넘겼다는 혐의로 체포된 유대인 출신 ‘드레퓌스’ 대위도 그 중 한 명이다. 드레퓌스가 당시 프랑스 사회에 만연했던 유대인 혐오증 희생자라는 사실을 에코는 19세기 프랑스 신문 문체로 이렇게 논평한다.

“시모니니는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 때문에 드레퓌스가 죄인이 되었음에도 그 유대인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의 기억과 그 기사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사건이 한 나라 전체를 얼마나 심하게 뒤흔들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당시에 프랑스인들은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각자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고 있었다.”(2권 649쪽)

실제로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은 1921년 ‘런던 타임스’에 의해 허위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이 문서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을 때 사람들은 가짜를 믿는 경향성이 있다.

에코는 2010년 한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설을 쓰면서 이것이 동시대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베를루스코니는 선거전 내내 판사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이중적인 음모를 들먹였다. 이제 공산주의자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의 눈에는 그들이 여전히 체제를 전복하려 애쓰고 있다.” 온갖 불법과 부정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방송과 미디어 그룹의 총수라는 점을 이용해 정권을 거머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집권 시절에 에코가 이 주제에 주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