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행 초기 불가피한 희생양? 입양특례법 재개정 시급하다

입력 2013-01-16 20:00


입양부모들이 입양법 재개정을 얘기하면 생모의 양육권을 외면한 채 입양만을 촉진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입양으로 아이를 품어본 모든 부모는 미혼모와 그들이 낳은 아기의 고통을 가슴으로 느낀다.

자신들이 낳은 영아를 살해한 혐의로 남녀 고등학생이 체포된 적이 있다. 만약 이들이 아이 양육을 결심했다고 가정해보면 현실은 어떨까. 단순히 경제적인 면에서 고통은 그치지 않는다. 각자 원가족에게 심한 모욕과 박해를 당하고, 사회적으로도 매장에 가까운 냉대를 받기 십상이다. 최근까지 임신을 이유로 퇴학시키는 학교들이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처럼 긴급구호가 필요한 우리의 현실은 미혼모의 양육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가려 묻혀 버렸다. 정부는 현행 입양법으로 개정하기 전에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한 가시적 노력과 현실적 지원부터 서둘러야 했다. 법 개정은 그 뒤에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진행했어야 옳았다.

결국 1차적 피해자는 생모에 의해 유기되고 시설에 방치된 아기들이며, 또 다른 피해자는 아기를 유기할 수밖에 없었던 미혼모다. 이들은 통계수치나 사회적 현상으로 뭉뚱그려질 수 없는, 하나하나가 소우주라 할 수 있는 소중한 생명들임에도 법 시행 초기의 불가피한 희생양 정도로 치부된다.

이들의 고통을 끌어안기 위해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첫째, 가족관계등록부의 의무적 출생기록은 미혼모 의사에 따라 예외가 허용될 수 있도록 하라. 서구의 제도를 기계적으로 이식하기 전에 각 개인의 고통은 그가 처한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혈연 중심의 배타적 가족주의가 굳건한 한국 사회에서 입양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등 소수자 가족들이 겪는 편견을 깨기 위한 사회 전체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둘째, 입양허가제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입양 전담 판사를 배치하고, 지금처럼 전담 인력이 없어 아까운 시간이 허비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예비 입양부모의 현실 뒤에는 시설에서 새 부모를 기다리며 신생아용 좁은 침대에 몸을 구부린 채 자라나는 아기들이 있다. 이들의 입양 대기 기간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입양을 결심한 부부는 흔히 ‘나 죽고 나서 입양하라’는 양가 부모의 결사반대에 부닥친다. 입양가족이나 미혼모에게 입양이 목숨의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같다. 혼외출생자에 대한 불온한 시선, 즉 혈연 중심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편견 때문이다. 혈연이 최고의 가치이며 낳은 사람이 무한책임을 져야 하고, 입양 촉진은 폐기해야 한다는 현행 입양법의 정신은 미혼모와 입양 가족들을 괴롭혀 왔던 사회적 편견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문제의 원인으로 대책을 삼는 자가당착에 빠지지 말기 바란다. 미혼모의 양육권과 입양 활성화가 유연하게 공존하는 길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

정은주 건강한 자녀 양육을 위한 입양가족 모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