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뛴다-종목별 최고령 선수들] ⑤ 프로배구 후인정

입력 2013-01-16 19:56


비록 임시방패지만… 오는 세월 가로막으리라

그는 급박한 상황에서만 배구 코트에 나올 수 있다. 원포인트 블로커이기 때문. 상대의 스파이크를 막는 것이 그의 임무다. 서브권이 상대 팀으로 넘어가면 코트에서 나와야 한다. 그는 프로배구 V리그에서 남녀 선수를 통틀어 최고참인 후인정(39·현대캐피탈)이다. 후인정은 한때 국내 최고의 스파이커였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면 상대 팀 블로커들은 사색이 됐다. 파워 넘치는 그의 스파이크는 ‘명품’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팀의 ‘임시방패’가 되어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후인정은 경기 중 자기보다 훨씬 어린 후보 선수들과 함께 코트 밖 웜업존(warm up zone)에서 대기한다. 그에게 웜업존은 낯선 곳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왔다. 그런데 웜업존 신세라니! 그에게 자존심이 상하지 않느냐고 물어 봤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제겐 자존심보다 이렇게 뛸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합니다. 경기에 많이 나가진 못하지만 코트에 설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해요.”

후인정은 2011년 여름 선수 생활에 큰 위기를 맞았다. KOVO컵 경기 때였다. 점프한 뒤 착지하는데 왼쪽 발뒤꿈치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 비시즌 때 다쳤던 곳이었다. 통깁스를 한 채 두 달간 꼼짝도 못했다. 2011∼2012시즌 후반기에 깁스를 풀었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팀에 복귀했지만 그의 자리도 없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은퇴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구단에서도 은퇴 얘기가 나와 더 힘들었죠. 결론은 ‘이대로 끝낼 수 없다’였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은퇴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캐피탈은 후인정에게 기회를 줬다. 그는 원포인트 블로커로 변신한 이후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공격수 시절에는 세터가 올려 주는 공을 때리기만 하면 그만이었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경기를 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또 웜업존에서 생활하다 보니 후보 선수들의 소중함도 알게 됐어요.”

후인정의 소망은 다시 한번 우승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그는 2005∼2006, 2006∼2007시즌 연속으로 현대캐피탈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우승한 순간의 짜릿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은퇴하기 전에 우승 한 번만 더 시켜 달라’고 후배들을 다그치고 있어요.”

현대캐피탈은 16일 현재 10승6패(승점 30)로 2위에 올라 있다. 후인정은 후반기에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며 선두 삼성화재(12승3패·승점 35)를 누를 자신이 있다고 했다.

화교 출신인 후인정은 한국으로 귀화한 첫 선수다. “나를 인정해 주는 곳이 나의 조국”이라는 후인정은 국가대표로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1995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어요. 그해 일본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선 한국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후인정에게 은퇴 후 계획을 물어 봤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미국으로 가서 배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요. 영어도 열심히 배울 겁니다. 나중에 지도자가 되면 외국인 선수들과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하고 싶거든요.”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후인정은 그렇게 웜업존에서 제2의 인생을 웜업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