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민수] 박근혜의 배꼽인사

입력 2013-01-16 21:34


#장면 1: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9일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깊이 꺾어 유치원생들의 ‘배꼽 인사’를 했다. 불과 한달보름 뒤면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될 이의 깍듯한 인사를 받은 대한노인회 회원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장면 2: 우리나라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지난달 26일 전경련에서 대기업 총수들과 간담회를 갖기 위해 온 박 당선인에게 75세의 정 회장은 아이처럼 얼굴까지 붉혔고 61세의 당선인은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웃음을 보냈다.

박근혜식(式) 인사법이 화제다. 그는 정 회장을 만나기 직전 소상공인단체연합회 사람들에게는 머리를 깊이 숙였다. 때와 장소, 만나는 이들에 따라 박 당선인이 다르게 인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통치자의 정치적 의미 담겨

국가최고지도자의 인사는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두 장면이 더 있다. 2000년 평양순안공항에 내리는 김대중 대통령을 마중 나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나 7년 뒤 김 위원장이 있는 평양까지 육로로 찾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걸어오지 않았다. 짝다리를 짚고 서 있던 그는 노 대통령이 오자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데 그쳤다.

2009년에는 ‘대통령 중의 대통령’ 미국 대통령이 90도 인사를 해 논란이 인 적이 있다. 일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에게 허리를 꺾어 극도의 예의를 갖췄다. 반면 일왕은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잡고 가볍게 목례만 했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신선하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미국 언론에서는 저자세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처럼 국가 정상이 머리를 숙이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치 않은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허리를 꺾어 인사한 적이 거의 없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도 손을 들어 인사하거나 고개를 숙인건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목례만 했다.

외교통상부 의전 매뉴얼에는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 등에서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만났을 때 인사하는 예법이 있다. 친근감의 표시로 볼을 비비거나 포옹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악수를 나누고 가볍게 목례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보다 머리를 너무 많이 숙이면 오마바 대통령처럼 저자세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박근혜식 인사법으로 돌아가 보자. 박 당선인의 ‘파격적’인 배꼽 인사를 본 이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재벌 총수를 만나 목례를 한 것과 비교하며 그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제왕의 인사법’을 배운 것 아니냐는 풀이를 하기도 한다. 강자에게는 강하게, 약자에게는 살갑게 다가섰다는 얘기다. 박 당선인이 어떤 마음을 먹고 다양한 인사법을 구사하고 있는지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반대한 48%의 국민들은 배꼽 인사에 ‘진정성’이 들어가 있기를 바란다. 노인들과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분들을 만나 고개만 숙일 게 아니라, 그들 편에 서서 국정을 펼 것을 주문한다. 그렇지 않으면 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진정성 담아 국민에 다가서길

보통 사람들끼리도 상대가 고개를 숙이고 다가서면 경계심을 풀고 호감을 나타내는 게 다반사다. 하물며 대통령이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인사를 하는데 마음을 열지 않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허리가 꼿꼿해지는 순간, 또다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맞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2월 25일 취임 이후에는 박근혜표 배꼽 인사를 더 자주 봤으면 좋겠다.

그간 우리는 대통령들의 꺾어진 허리를 온갖 비리로 아들이나 형님이 감옥에 가는 경우에만 봤다. 대국민 사과용 배꼽 인사를 더 이상 원치 않는 이유다.

한민수 정치부장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