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부서도 반대 움직임 있는 헌재소장이라면

입력 2013-01-16 19:15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소득이 없는 장남의 재산을 신고하고도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는 의혹을 비롯해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에 이르기까지 한둘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수장으로서는 자질이 모자라지 않느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급기야 퇴임을 앞둔 이강국 헌법재판소장도 이 같은 논란에 안타깝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우선 이 후보자의 예금자산이 수 년 만에 6억원가량 늘어난 것에 대한 해명이 명확하지 않다. 총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은데도 본인은 생활비를 저축하고 부조금과 상속 받은 집을 처분해 예금했다고 밝히고 있다. 2005년 말 수원지법원장 재직시절 대기업에 송년회 경품을 협찬 받도록 지시했다는 것도 공직자로서 올바른 처신은 아니다. 본인은 협찬 지시 사실을 극구 부인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일화라고 한다.

무엇보다 헌재 재판관 시절 본인의 의견을 강요하는 등 독선적인 모습을 보여 연구관들이 기피했다는 지적은 중대한 결격사유로 보인다. 헌재 연구관들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헌재의 기존 선례 가운데 자신의 입장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해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다양한 법리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헌법적 판단을 했다면 균형감각은 없고 편향성만 있다는 말 아닌가.

헌법재판소장은 모든 재판관들이 참여하는 평의를 주재하며 사건을 심리한다. 역대 소장들은 중립적 입장에서 평의 주재만 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는 9명의 재판관 가운데 1명으로서만 참여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재판관 9명의 의견이 고루 반영돼야 객관적인 헌법재판이 가능하기 때문에 세워진 전통이다. 이 후보자가 재판소장이 될 경우 이 같은 평정심을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물론 그의 성격이 꼼꼼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쳐 고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비치는 측면이 있다고 옹호하는 후배 법조인도 있다. 헌재 연구관들과 함께 헌법 재판에 관한 저서를 낼 정도로 학구적인 면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함께 일했던 헌재 내부에서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상 첫 헌재 재판관 출신 후보이기 때문에 조직 내의 거부 움직임은 의외이며 충격적이다. 일부 연구관들은 이 후보자 지명 반대 연판장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고 한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도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하는 헌법수호 기관의 수장 후보가 이런저런 이유로 구설에 오르는 자체가 이번 인선이 잘못됐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 아니겠는가. 지명 철회가 어렵다면 청문회가 열리기 전 본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퇴를 고려하는 것도 방법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