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공약 진단] 공약 수정 시사 배경… 아무리 쥐어짜도 재원조달 막막 사실상 출구전략

입력 2013-01-16 21:36


무엇보다 약속을 중요시해 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돈’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증세 없이 연평균 26조9000억원을 마련해 여러 공약을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니 상황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재원을 마련하기가 벅차진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6일 ‘말 바꾸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약 수정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 7일 “국민들께 한 약속은 아주 정성들여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인수위는 기획재정부에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조달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선인이 제시했던 재원 총량(5년간 134조5000억원)을 던져놓고 알아서 맞춰오라는 요구였던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최대한 협조를 당부했지만 일부 정부부처가 난색을 표하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인수위 측에선 부처이기주의를 경고하며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정부 입장이 이기주의 때문만은 아니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박 당선인 측에서는 예산절감 및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16조3000억원(복지행정 개혁에 따른 세출조정 포함)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정몽준 전 대표, 심재철 최고위원 등 여당 일각에서도 공약 속도조절론을 제기하며 출구전략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공약 실현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된다는 주장이지만 공약 이행 불발에 따른 불똥이 당으로 튈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당장 수정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항목은 인수위와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복지 공약들이다. 특히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100% 건강보험 보장’ 공약에 대해 형평성 논란과 진료비 낭비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기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장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주최한 ‘신정부 복지정책 추진방향’ 토론회에서 “4대 중증질환만 보장할 경우 다른 질환자들이 형평성 시비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전체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하는 기초연금 공약은 도입 첫 해인 2014년 14조원의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고령화가 진행된 2017년에는 17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군 부사관 증원을 비롯해 부동산 경기 활성화, 가계부채 대책 등에서도 당초 예상보다 실제 필요한 재원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인수위가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성열 이영미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