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생명나눔-인체 조직 기증] (상) 기증된 인체조직 어떻게 쓰이나

입력 2013-01-16 21:43


알제리서 후송 중화상 환자 살린 건 수입 피부였다

인체조직 기증은 가장 숭고한 사랑의 실천이다. 최근 단체 기증 서약이 이어지는 등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곤 있지만 장기 기증이나 헌혈 등에 비하면 국민 인식은 여전히 낮다. 이에 국민일보는 국내 인체조직 기증 활성화의 필요성과 제도적 지원책, 해외의 기증 시스템 등을 3회에 걸쳐 시리즈로 보도한다.

지난해 12월 20일 김포국제공항.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산업 근로자 최모(46·대구)씨가 에어앰뷸런스에 실려 급히 후송됐다. 얼굴과 목, 가슴, 배, 다리 등 온몸의 절반 가까이(48%)에 2∼3도의 깊은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일하던 중 폭발 사고가 발생해 화마가 덮친 것이다. 공항에는 화상전문 베스티안서울병원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시가 급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환자를 장시간이 걸리는 한국까지 옮긴 이유는 뭘까. 고국에서 치료받게 하고픈 보호자의 요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현지에서 환자에게 이식할 피부를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구한다 하더라도 알제리에서 수술을 감행하기에는 현지 의료수준이 미덥지 않았다. 한국 의료진의 장기 및 조직 이식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서둘러 환자를 병원으로 옮긴 의료진은 곧바로 화상으로 손상돼 죽은 피부(가피)를 벗겨내고 그 자리에 사후 기증받은 다른 사람의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에 들어갔다. 옮겨 심은 피부는 감염 방지와 체온 조절 등 ‘임시 자기 피부’ 역할을 한다. 중화상의 경우 2∼3일 안에 죽은 조직을 제거하고 피부이식을 받지 않으면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보통 사후 성인 1명에게서 얻을 수 있는 피부는 2000∼2500㎠다. 성인의 전체 피부 면적은 1만6000∼1만8000㎠ 정도. 그래서 전신 화상 환자의 경우 피부 이식재 한 개를 최대 6배까지 면적을 늘려 사용한다. 최씨도 이 같은 방법으로 피부를 2배 정도 늘려 4365㎠의 몸에 이식받았다. 이식된 피부는 보통 2∼3주가 지나면 면역거부 반응이 일어나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그 자리에 새로운 속살이 돋아나고, 이후 2∼3차례 더 자기 피부를 떼어내 이식받는 치료를 받는다.

최씨에게 이식된 피부는 내국인에게서 기증받은 것이 아니라 수입된 제품이었다. 수술을 집도한 베스티안서울병원 윤천재(응급의학과) 부원장은 “국내 기증 피부를 환자에게 사용하는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최근까지 국산 피부 이식재를 사용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입된 인체조직도 엄격한 검사를 거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미국, 유럽 등 수출국에서 자급자족하고 남은 것을 해외로 보내기 때문에 품질이나 안전성을 100% 담보할 수 없다. 윤 부원장은 “국내 피부 이식재 수요량이 공급량보다 훨씬 많고, 환자 안전을 위해서도 국내 기증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불가피한 재난, 즉 전쟁이나 대형 화재, 지진 등이 발생하면 화상 환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면서 “이때 기증된 피부가 없어 환자들이 사망하게 된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정형외과와 치과 영역에도 뼈 이식재가 쓰인다. 종양이나 감염, 외상 등으로 뼈 일부가 소실되거나 제거됐을 때 기증받은 뼈나 수입 뼈 조직을 이식해야 한다. 인공관절수술 후 합병증으로 주변 뼈가 녹거나 골절된 뼈가 잘 붙지 않아 틈새를 메워야 할 때도 뼈 조직이 필요하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조직은행장인 정양국(정형외과) 교수는 “특히 골육종(뼈암) 환자는 연간 150∼200명 발생하는데, 약 70%가 20세 미만 청소년과 어린이들이다. 이들은 종양이 제거되더라도 그 자리에 뼈를 다시 채워 넣어야 장애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치과에선 임플란트(인공치아)를 하기 전 이를 받쳐줄 잇몸뼈가 없으면 먼저 뼈 이식재를 심어야 한다. 서울대치과병원 임플란트센터장 이용무 교수는 “임플란트 환자의 50%가 뼈 이식이 필요한 환자”라면서 “대개 기증받은 사람 뼈를 사용하고 소뼈, 합성뼈를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환자에 쓰이는 인체조직 대부분은 피부와 뼈가 차지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국내 의료기관 등에서 이식된 인체조직 총 81만9986개 중 98%(80만5120개)가 피부였다. 이어 뼈(1만1834개), 건(2102개), 연골(370개), 혈관(292개), 근막(241개), 심장판막(26개), 인대(1개) 등 순이었다. 정 교수는 “하지만 이식된 피부와 뼈의 76% 정도가 해외에서 수입됐거나 수입 원료를 국내에서 가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심장판막이나 혈관, 양막(안과질환에 쓰임) 등은 수요량이 적어 국내 기증으로 대부분 충당된다.

해외 인체조직은 수입 과정에서 추가 비용(부가세 부과)이 들어 국내에서 기증된 것에 비해 약 40% 비싼 값에 공급된다. 또 정상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법적으로 채취·유통됐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수입 인체조직의 92%는 미국산이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환자가 필요로 하는 인체조직을 다른 나라에 의존해 충당하는 것은 경제 선진국을 자부하는 국민 정서에 걸맞지 않으며 나눔과 상호 돌봄의 미덕을 가진 우리 문화와 전통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며 국내 기증 활성화를 촉구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