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직 개편 이후] 朴, 메르켈式 ‘통큰 정치’ 밑그림

입력 2013-01-16 21:37

[이슈분석] 보수=작은 정부 깨고 큰 정부 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정부조직을 개편하며 부처를 2개 늘리고 경제부총리제를 도입했다. 정부 몸집이 불어난 것이다.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부가 ‘보수=작은 정부’란 도식을 깨고 복지 확대, 시장 개입 등 ‘큰 정부’를 그리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안을 만든 강석훈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은 16일 기자들과 만났다. 보수 정부인데 큰 행정부가 됐다는 질문에 그는 “지금 시대가 정확하게 ‘크다’ 또는 ‘작다’의 단선 방향으로 보기 어려운 것 같다”며 “국민을 위해 진정 봉사할 수 있는 경제체제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이 언급은 정부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당선인의 ‘민생 정부’ 의지를 최우선적으로 반영했다는 뜻이다. 실제 ‘중산층 70%’ 재건을 내세운 박 당선인 공약만 봐도 ‘큰 정부’ 기조를 알 수 있다. 기초연금 도입, 노인 일자리 확대, 기초생활보장 강화 등은 하나같이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이다.

박 당선인이 ‘경제 부흥’ ‘잘살아보세’ 등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는 등 국가 주도의 강력한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박 당선인도 정부가 나서서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시각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 박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하면서도 의료보험을 도입하는 등 복지제도의 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안종범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 등 박 당선인의 경제 브레인들도 그동안 박 전 대통령과 오토 폰 비스마르크 전 독일 총리,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등을 들며 ‘복지를 책임지는 보수’를 강조했다.

‘큰 정부’가 시대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조처라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5년 전과 달리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며 세계적으로도 ‘큰 시장, 작은 정부’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기조가 퇴색하고 있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는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새누리당도 대선 공약으로 복지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하는 등 국가의 개입을 강조했다”며 “자연스럽게 정부 부처 증가와 정부 역할의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기조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떠올리게 한다. 보수정당 기민당 소속인 메르켈 총리는 최저임금 인상, 보육비 지원 등 진보 정책을 적극 흡수하고 있다. 박 당선인도 자서전에서 “메르켈 총리가 추구하는 경제정책이나 외교정책의 노선이 내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일각에는 단순히 부처 수가 늘어난 것으로 정부가 커졌다고 말하기는 이르다는 관측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부처 수가 아니라 향후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봐야 한다”며 “정부가 시장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느냐 등을 따져봐야 큰 정부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과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은 17일 오전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해 정부조직 개편안을 설명하고 정부조직법의 1월 임시국회 처리를 요청키로 했다. 민주당은 전날 인수위가 자신들과 협의 없이 개편안을 발표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