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무명 딛고 ‘나가수’ 가왕(歌王) 등극… 인생 역전 드라마 쓴 가수 ‘더원’

입력 2013-01-16 18:40


마지막 무대 전 울었죠, 주변 기도 감사해서…

가수 더원(본명 정순원·39)은 무명에 가까웠다. 1998년 혼성그룹 스페이스A의 메인 보컬로 데뷔, 정규 솔로음반을 4장이나 낸 15년차 가수였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내로라하는 가수들 경연장인 MBC ‘일밤-나는 가수다(나가수)’에 출연하면서 그의 인생은 확연히 달라졌다. ‘새 가수 초대전’을 거쳐 ‘9월의 가수’ 자리에 오르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시청자들은 애끊는 목소리로 누구보다 애절한 노래를 뽑아내는 그의 실력에 감탄했다.

인생 역전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나가수’ 왕중왕전 격인 ‘슈퍼디셈버 2012 가왕전(歌王戰)’에서 펼쳐졌다. 5∼11월의 가수 7명이 겨루는 이 무대에서 그는 ‘한국의 머라이어 캐리’ 소향(본명 김소향·35), ‘맨발의 디바’ 이은미(47) 등을 차례로 꺾고 지난달 30일 마침내 ‘가왕’에 등극했다.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지난 14일 더원을 만났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 진정성을 다해 노래한 점이 어필한 것 같다”며 “앞으로도 ‘가슴이 부르는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가수’ 출연 소회와 자신의 굴곡진 인생 스토리를 하나씩 풀어놨다.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하면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 같다.

“사실 내가 연예인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하고 살아왔다. 대중들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거의 안 했다. 방송 출연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니 나도 뮤지션인 동시에 연예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방송에서 ‘가왕전’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전날 밤 계속 눈물이 났다고 말했는데.

“결승전에서 선보인 두 곡 중 하나가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이었다. 그 노래를 연습하는데 전주만 들어도 계속 눈물이 났다. 크리스천이라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의 기도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그래서 내가 노래 제목처럼 높은 곳으로 들어올려져 대표로 복을 받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쟁쟁한 가수들과 경연을 펼쳤다. 가장 큰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가수가 있다면 누구였나.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소향씨의 경우 나랑 감성이 정말 비슷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으면 소향 같은 가수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은미·박완규(40) 선배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이긴다는 생각은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매번 무대에 올랐다.”

-보컬 트레이너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하면서 고생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지금 활동 중인 가수들을 비롯해 지금까지 400명 정도를 가르쳤다. 과거엔 보컬 레슨비로만 매달 3000만∼4000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2009년 지인을 통해 부동산 사업 등에 손을 댔다가 50억원을 날렸다. 지금도 빚이 30억원이 넘는다. 신용불량자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들었던 건가.

“2010년부터 지난해 ‘나가수’ 출연 전까지 힘들었다. 서울 강남 한 아파트에 살았을 때는 수도랑 전기가 모두 끊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크게 좌절하진 않았다. 전기가 안 들어와 편의점에서 2000원짜리 양초 몇 개 사와서 거실이랑 방에 켜놓고 앉아있으면 나름 운치가 있기도 했다(웃음). 사우나 생활도 6개월 정도 했다. 희미하게 나를 비추는 한 점 빛을 좇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정상급 보컬 트레이너로서 노래 잘하는 비법을 공개하자면.

“호흡 발성 음정 박자, 이 네 가지를 잘하는 게 50%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하나의 틀에 불과하다. 이 틀 안에 무엇을 어떻게 채워 넣을지는 노래하는 사람의 감성에 달려 있다.”

-올해는 예년과는 확실히 다른 한 해를 보낼 것 같은데.

“정말 바쁠 거 같다. 우선 다음 달엔 새 앨범을 발표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음반이다. 3월부터는 전국 투어 및 해외 공연이 잡혀 있다. 4월엔 보컬 트레이닝과 관련된 책을 내고 아카데미(학원)도 열 계획이다. 현재 있는 아카데미나 가창 관련 책들 중엔 엉터리가 너무 많다.”

-엉터리가 많다는 건 무슨 뜻인가.

“예컨대 책만 보더라도 그렇다. 최근 대형서점에 가서 보컬 트레이닝 서적 20권 정도를 봤다. 그런데 그 중 12권은 해부학 책처럼 전문적이어서 아예 이해가 안 되더라. 나머지 8권은 ‘진심을 담아 노래하라’는 식의 막연한 얘기밖에 없었다. 책이나 아카데미를 통해 내가 그동안 미친 듯이 헤매며 발견한 노래의 방법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