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흥행 비결은… 비참한 사람들, 이 시대 아픈 이들을 위로하다

입력 2013-01-16 18:35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기세가 무섭다. 15일 현재 관객 수 493만9103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17일에 500만명 돌파가 확실하다. 뮤지컬 영화로는 최고 기록이다. 이런 추세라면 600만 관객 기록까지 달성하고 국내 개봉된 역대 외화 중 ‘흥행 톱10’에도 오를 전망이다. 13일(현지시간)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작품상·남우주연상·여우조연상 등 3관왕을 거머쥐며 작품성까지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2시간 38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대사는 거의 없이 노래로만 이뤄진 뮤지컬 영화. 그런데도 500만? 그 흥행의 비결은 무엇일까.

# 제목 그대로 ‘비참한 사람들’의 마음 달래줘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어로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 제목 그대로 가난하고 낮은 자들의 삶을 다뤘다.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대가로 무려 19년 형을 살았다. 미혼모 판틴은 어린 딸 코제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탐스러운 머리와 생니를 뽑는다. 바리케이드 뒤의 시위대는 혁명가를 부르며 왕정에 맞선다. 자베르 경감에 대한 장발장의 한없는 용서도 감동적이다. 관객 저마다, 각 인물의 상황에서 공감하고 눈물을 흘렸다.

인터넷에는 “대선 이후 패배감을 느낀 48%의 마음을 달래준 것 같다” “바리케이드 장면에서 1980년대 광주와 민주화운동이 떠올랐다”는 관람 소감이 올라왔다.

영화 홍보사 레몬트리 측은 “관객들이 우리 정치 상황과 150년 전 프랑스 상황이 유사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배급 시기가 대선과 연말연시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뮤지컬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도 흥행의 한 요인이다.

# 매킨토시가 영화에도 참여… 뛰어난 작품성

흥행의 가장 기본은 뛰어난 작품성이다. ‘뮤지컬의 제왕’으로 불리는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영화 제작에도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제작사는 영국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인 워킹타이틀.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한 영화에 모이기 힘든 등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특히 장발장 역의 휴 잭맨은 ‘엑스맨’의 울버린으로 친숙한 배우. 김치와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을 자주 표현해 우리나라 팬들에게 친숙하다. 지난해 11월에는 직접 한국을 방문해 영화를 적극 홍보했다. 대부분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이들은 연기뿐 아니라 빼어난 노래 실력을 보여줬다.

이들의 노래가 연기만큼이나 절절했던 이유는 뮤지컬 영화 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촬영장에서의 라이브 녹음 방식 때문이다. 기존의 뮤지컬 영화들이 미리 노래를 녹음하고 촬영장에서 립싱크로 입 모양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배우들이 연기를 하며 노래를 직접 녹음했다. 감독은 ‘킹스 스피치’로 2011년 제83회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영국 출신의 톰 후퍼. 그는 뮤지컬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무대를 스크린에서 확장시켜 소설 원작의 큰 스케일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 빅토르 위고 원작의 힘과 빼어난 음악

완성도 높은 영화의 바탕에는 고전으로 칭송받는 원작 소설과 음악이 있다. 1862년 초판이 발행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은 방대한 서사시다. 가난한 이들의 비참한 삶, 불평등한 사회의 모순, 체제를 바꾸기 위해 일어난 지식인과 민중의 혁명 열기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큰 울림을 준다. 시대를 아우르는 묵직한 원작의 힘이 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테마곡이 많아 뮤지컬계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판틴이 절망 속에서 부르는 ‘아이 드림드 어 드림’, 에포닌이 부르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 ‘온 마이 오운’이 대표적이다. 장발장이 교도소 부역에 동원돼 항구에서 대규모 함선을 끌어 올리는 장면에서 나오는 ‘룩 다운’, 바리케이드 뒤에서 부르는 혁명가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 등은 두고두고 기억될 명곡이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