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3)] “그들은 손잡고 가야할 우리들의 꿈나무”
입력 2013-01-16 17:40
“학교를 다니다 보면 엄마가 외국인이라고 수군거리는 친구들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언니 오빠들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초등학교 6학년인 정연이는 멘토와 멘티의 관계 속에 맘을 터놓고 얘기하는 프로그램인 ‘르네상스’가 정말 좋다고 얘기했다.
정연이와 같은 다문화가정 2세들과 함께하고 있는 나는 좋은 환경 속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다양한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을 돕는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많이 느꼈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어느 날 다문화가정을 다룬 신문기사를 봤다. 내용은 결혼이민여성들의 2세들이 겪는 차별의 실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다문화’라고 하면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서 온 결혼이민여성들을 먼저 떠올렸지 그들의 2세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 기사를 보기 전까지 다문화가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놀라움과 당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 주위에서도 다문화가정의 사정과 특히 2세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기사를 보고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한국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가무스름한 피부색과 한국인과 조금 다른 얼굴 형태 때문에 심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나름대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남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이들의 어려움은커녕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정말 부끄러웠다. 기사를 읽고 내 동생 같은 이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우리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오랜 생각 끝에 2010년에 YWCA 다문화가정 자녀 멘토링 동아리 ‘르네상스’를 만들었다. ‘르네상스’는 서울에 사는 다문화가정 초등학생을 위한 1대 1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편안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즐겁게 활동하는 등 시간을 함께하면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멘토링의 형식도 공동체 프로그램 놀이 활동 중심으로 기획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위해 미술, 음악 등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실제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워낙 놀림을 당하다 보니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측면에서 음악 활동은 특히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이들이 안정감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즐거움뿐만 아니라 합주에서 파트 하나하나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처음에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나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처음에는 이들을 동정과 수혜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친해지고 아이들의 가정 사정도 알게 되면서 다문화가정과 그 자녀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나에게 “‘우리나라’ 아이들 중에도 돌봄과 관심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까지 관심을 갖느냐”라고 묻는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바로 ‘우리나라’ 아이들이고, 미래를 짊어질 꿈나무들이 아닌가. 이들은 나에게 더 이상 교육과 수혜의 ‘대상’이 아닌 나와 함께 이 시대를 걸어가야 하는 동시대인인 것이다.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시작된 ‘르네상스’가 어느 덧 ‘나와는 다른 이들’을 대하는 차가운 내 시선과 마음을 어루만졌다.
한지이(서울YWCA 대학생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