枯死하는 산림정책… 산림청·환경부 80%이상 업무중복 인력·예산낭비
입력 2013-01-15 21:33
환경부는 지난 1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를 통해 현재 농림수산식품부 외청인 산림청을 환경부 외청으로 바꾸는 방안을 보고했다. 산림청의 주된 업무가 1970∼80년의 임업 중심에서 이제는 생태계 보전, 기후변화 적응 등 환경 중심으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중복된 업무를 둘러싼 상호 갈등과 행정력 낭비를 줄이고 두 기관의 연구기관들과 산림생태계 보전 업무를 통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거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15일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이 방안은 반영되지 않았다.
현재 산림청과 환경부의 업무 가운데 중복되는 것의 비율은 분류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80%에서 많게는 96%에 이른다. 또한 전국토의 3.9%에 이르는 국립공원 육지면적 가운데 53%가 산림청 관할인 국유림이다. 공원 내 국유림에서는 환경부 산하인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산림청이 일부 중복되는 업무를 하거나 고유 업무에 대해서는 서로 다투는 경우가 잦다. 특히 인력 낭비는 물론 서로 잘못된 것은 떠넘기고, 좋은 것은 가로채려는 관료주의의 폐해가 나타난다.
◇백두대간 종주등산로를 둘러싼 갈등=백두대간보호구역의 48%가 환경부관할인 국립공원과 겹친다. 백두대간을 관리하는 산림청은 백두대간 종주를 위한 국립공원 내 마루금(능선) 등산로의 탐방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법정 탐방로 이외 지역에 대해서는 출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관할하는 마루금 가운데 80㎞는 탐방로가 개설되지 않았다. 즉 설악산 미시령∼마등령 7.5㎞ 구간 등 4개 공원 11개 구간은 공단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두 기관이 대립하는 가운데 탐방객들은 지금도 과태료를 무릅쓰고 불법산행을 감행하고 있다.
산림청은 지난해부터 백두대간 종주 코스의 합법화 요구는 접었으나 백두대간 마루금을 동과 서로 우회하면서 백두대간을 잇는 등산로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림청은 “우리나라도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같은 장거리 도보 트레일이 필요한데 백두대간은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백두대간 정책을 맡은 환경부는 출입을 통제하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관리를 맡은 산림청은 수수방관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백두대간 보호구역을 법으로 지정만 해놓고 정작 필요한 보전·복원 노력 및 예산확보는 뒷전이다. 백두대간이나 국립공원 및 국유림에서 채석장, 시멘트 공장, 도로 등에 의해 훼손된 구간에 대한 복원사업은 두 기관 모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관리주체의 이원화에 따른 비효율성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심 생태계는 국립공원, 인력과 예산은 산림청에=설악산 귀때기청봉 근처의 분비나무 군락이 고사하고 있다. 고사목이 즐비한 가운데 건강한 치수가 많지 않아 이곳에서 분비나무의 장래가 위태롭다. 고산지대의 한반도 고유종이나 법적 보호종을 멸종위기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모니터링과 자생지 안팎의 복원·증식사업이 절실하다. 국립공원연구원이 3년 전부터 기후변화 영향 모니터링 체계 구축에 들어갔지만, 공원관리와 탐방객 서비스가 주 업무인 공단으로서는 연구 인력과 예산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연구인력과 예산은 산림청이 풍부하지만, 산림 가운데 규모가 크고 종 다양성이 높은 생태계는 국립공원에 몰려 있다. 2012년 산림청의 예산은 1조8172억원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1822억원에 비해 10배가량 더 많다. 그런데도 산림청의 전문가들은 핵심적인 광역 생태계에 접근하지 못하는 게 마냥 서럽다. 단편적 조사는 가능하지만, 주기적인 조사와 체계적 장기모니터링이 어렵다.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은 강원도 고산지대에 사는 만병초 등 기후변화 취약 종 100종을 선정, 연차적으로 광릉 숲 등에 옮겨 심는 자생지 외 증식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생지내 모니터링과 복원은 복주머니란 등 극소수종에 그치고 있다.
◇양 기관간의 갈등=국립공원관리공단은 공원내 핵심보호구역에 해당되는 자연보존지구를 지정하거나 확대하려 할 때 국유림일 경우 산림청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산림청은 자연보존지구 안에서 간벌이나 시설 설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종종 반대하는데 공단이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기는 어렵다. 역으로 산림청은 국립공원 내 국유림 경영행위에 앞서 공원사무소와 협의하게 돼 있다. 주로 중산간이나 저지대 국유림에서 임도를 개설하거나 간벌할 때 공단 측은 자연을 과도하게 훼손한다는 이유로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산림청으로부터 총 33건의 국유림 경영 협의요청이 들어왔다. 이 가운데 18건은 동의, 6건은 일부 동의, 9건은 부동의 처리됐다.
◇숲가꾸기 사업 등 이념의 격차=산림청의 주요 사업인 숲가꾸기는 빽빽이 들어찬 잡목과 어리 나무를 제거해야 큰 나무가 쑥쑥 자란다는 전제하에 주기적으로 간벌을 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생물다양성 시각에서 ‘잡목’이란 없으며, 키 작은 관목과 풀들이 있어야 소형동물과 중대형동물이 고루 살아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단은 공원지역 내에서 과거 산림청이 만든 인공림을 자연림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추진중이다.
현재 간벌작업을 하면 목재 판매수입은 간벌에 드는 비용을 겨우 충당하는 수준이다. 임업이 돈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산림청은 기후변화 적응과제나 산림휴양이나 레저활동 서비스 쪽으로 업무를 개발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업무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하고 있는 일과 정확하게 겹친다.
산림청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해 2월 공동협력 사업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력대상은 조림지 숲 생태개선, 참나무시들음병 공동방제, 산림재해 방지, 산림문화·휴양·숲 치유기능 증진 사업 등이다. 그러나 각 사업마다 한 기관이 주도하고 다른 기관이 방제비용이나 헬기를 지원하는 선에서 협력의 수준은 그치고 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