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진원 (12) 大盜 조세형 출소후 도움 요청에 “내가 돕겠다”
입력 2013-01-15 20:46
지역사회에서는 범죄예방을 위한 활동을 많이 했다. 1960년대 사회생활 초기부터 청소년선도위원으로 봉사하다 나중에는 검찰청의 범죄예방협의회 활동에도 참여하게 됐다. 96년에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범죄예방협의회장까지 맡게 됐는데, 이때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대도 조세형과 조우했다.
조세형은 98년 11월 재수감 15년 만에 청송감호소에서 출소했다. 출소하자마자 자신을 기소했던 검사를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그 검사가 당시 남부지청장으로 있던 정홍원 검사였다. 조세형은 정 검사를 만나 살아갈 길이 막막하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건 정 검사보다 내가 적임자였다. “내가 도우마” 하고 조세형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마침 2층이 비어 있었는데 별도 주방도 있어서 지낼 만했다. 조세형은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신세 좀 지겠습니다”하고는 돌아갔다. 그러곤 소식이 없더니 1주일쯤 뒤 “회장님, 조세형입니다”하고 전화가 왔다. “온다고 하더니, 왜 안 왔어” 하고 물었더니 “교도소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같이 지내자 해서 거기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래도 가끔 들러야지” 했더니 바쁘다고 했다. 잡지사와 방송사에서 인터뷰하자고 성화라는 것이었다. 조세형이 인터뷰한 내용들을 보니 교정당국이나 검찰이 불편해할 내용들이 많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우리 집에 머물진 않았지만 틈틈이 만나고 연락하며 지냈다. 한번은 주일날 내가 섬기는 교회에 데려갔는데, 찬양을 어찌나 잘하는지 교인들이 놀랄 정도였다. 더구나 그는 통일찬송가 558곡을 거의 다 외우고 있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죽을 것처럼 답답할 때는 소리를 마구 질러야 하는데 그냥 소리지르면 두들겨 맞습니다. 그런데 찬송을 부르면 아무리 크게 불러도 괜찮아서 매일같이 찬송만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하고 털어놨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훌륭한 믿음의 일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교회를 다니면 간증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내심 ‘잘됐다’ 싶었는데 출소하고 1년6개월쯤 지났을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목사님 모시고 결혼하게 됐습니다. 분에 넘치는 좋은 사람 만났습니다” 하고 알려왔다. 그게 마지막 전화였다. 6개월쯤 지나서 조세형은 일본에서 절도행각을 벌이다 검거돼 다시 교도소로 갔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신앙생활을 좀더 열심히 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무척 아쉬웠다.
조세형과의 인연은 출소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2002년 여름 김정길 법무장관이 불러서 법무부에 들어갔더니, “법무부 갱생보호공단 이사장을 맡아서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차관 예우를 받는 자리입니다”고 말했다. “예우보다 뭐하는 자리인지 알고 싶습니다” 했더니 “만기 출소자들 교육시키는 곳입니다” 하고 설명했다. 조세형의 재범을 막지 못한 데는 내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 자책하던 때여서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으로 이름을 바꾼 갱생보호공단은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주거지원 등을 통해 출소자들의 사회적응을 돕고 재범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공단은 무의탁 출소자들을 위해 15개의 합숙생활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크고 작은 사고가 종종 발생했다. 나는 낯선 사회환경에서 힘들어하는 출소자들에게는 신앙생활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수요일에는 생활관에서 예배를 드리고 주일에는 교회에 출석하게 했다. 성경다독상도 만들어 성경을 많이 읽도록 지도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덕분에 내 임기 중에는 큰 사건이 없었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