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홍은주] 토스터와 금융상품의 차이

입력 2013-01-15 18:49


소비자 입장에서 식빵을 구워먹는 토스터와 금융상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버드 대학의 엘리자베스 워런 교수는 그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소비자들은 토스터를 살 때는 자신이 무엇을 사는지 정확하게 알고 사지만 금융상품을 살 때는 내용을 잘 모르고 구입한다. 둘째, 토스터는 고장이 나봐야 못 쓰게 되는 것 정도지만 금융상품은 잘못하면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고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5명 중 한 사람이 돈을 못 갚아 집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한다(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통계). 셋째, 토스터는 한 번 구입하면 할부 구매를 하더라도 최초의 가격이 오르지 않지만 금융상품은 오히려 사고 난 후에 가격(이자)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

워런 교수의 주장에 임의로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토스터는 안전성을 알 수 있는 인증표시가 있지만 금융상품은 일반 소비자가 도무지 안전성을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자율과 기대수익률의 차이도 잘 모르는 노인이 레버리지가 높은 파생상품이 포함된 펀드에 멋모르고 가입했다가 엄청난 손해를 보기도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금융소비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자기책임 하에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소비자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빈발하고 소비자 피해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자, 복잡한 금융상품이 가지는 정보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적 속성과 이로 인한 ‘예견된 시장실패’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파생상품과 구조화증권(structured securities)이 쏟아져 나오면서 정확한 속성과 내재된 위험을 잘 알기 어려운 금융상품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판매된 것이다. 또 금융시장이 글로벌 네트워크로 복잡하게 얽히게 되면서 한쪽에서 발생한 위험이 지구 반대쪽에 큰 파장을 미치는 카오스 효과 역시 시장실패를 불러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정부가 시장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금융소비자보호 기구나 시스템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추세에 따라 한국에서도 지난해 말 금융소비자보호처가 금융감독원 내에 발족됐는데 이 조직이 금감원 내에 있는 것이 적절하냐에 대해서는 부처별로 여러 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금융기관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는 상호 대립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과 “금감원에서 떼어낼 경우 금융기관은 두 사람의 시어머니(?)를 모셔야 한다. 금감원에 그대로 두고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낫다”는 현실론이 팽팽하게 양분되어 있다.

새 정부의 부처조정에 따라 최종결론이 나겠지만 금융소비자 보호기관의 위상은 분명히 한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소속이 어디가 되든지 현재보다 기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고 법적으로는 명확하게 역할정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노후준비가 되어있지 못한 고령층, 중산층이 금융소비자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른바 인구구조적 메가트렌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장수위험에 노출된 고령층, 중산층이 초저금리 시대에 적정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융시장 변동성은 갈수록 더 커지는데 ‘투자는 자기책임’이라고 내버려 두는 것은 한마디로 정부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복잡한 금융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시에 제공하며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나 묵시적 담합, 불공정 거래를 선제적으로 예방하여 시장실패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과 동등한 혹은 우위의 정보력을 가진 기관의 적극적인 역할수행이 더없이 절실하다. 새 정부 출범으로 관련 기관의 위상이 재정립되는 올해가 금융소비자 보호의 진정한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