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민생공약 점검-국민행복기금] ‘빚 탕감’ 기대감 크지만 정부부담 늘고 ‘도덕적 해이’ 우려

입력 2013-01-14 21:35


신용불량자 등의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국민행복기금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공약이다. 국민 15명 중 1명의 빚을 탕감해 경제 활성화의 군불을 때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 조장, 성실하게 빚을 갚는 사람과의 형평성 문제, 정부 재정부담 등 걸림돌이 적잖다. 담당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재원 마련 계획이 잘못됐다며 최소 7000억원의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상반기 시행 전망=금융위 관계자는 14일 “행복기금 관련 공약 사항은 15일 인수위원회 업무 보고를 앞두고 중점적으로 실무를 준비 중”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이행 방안을 만들겠지만 안 되는 부분은 안 된다고 당선인 측에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미 재원 마련 방안 등에 대한 수정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복기금은 박 당선인의 중점 공약이라 상반기 중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행복기금은 채무불이행자와 다중채무자, 학자금대출자 등의 빚을 깎아주겠다는 가계부채 대책이다. 바꿔드림론(저금리 전환대출), 햇살론(대출금리 연 10%대 서민대출),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 등 기존 제도를 접목해 지원 수준과 대상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행복기금은 금융회사나 민간자산관리회사가 보유한 부실 채권을 싼값에 사들일 계획이다. 대출 원리금을 깎고 만기를 늘리는 방식으로 빚 부담을 줄이게 된다. 일반 채무자는 빚을 최대 절반까지, 기초수급자와 장애인 등 특수 채무자는 최대 70%까지 깎아준다. 캠코의 기존 신용회복지원 대상보다 20%씩 늘어난 한도다. 대신 채무자에게 재산이 전혀 없어야 한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50만원이 넘는 빚을 3개월 이상 못 갚은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126만명이다.

또 기금은 대출이자가 연 20% 넘는 다중채무자에 대해서는 1인당 1000만원까지 10%대 저금리 장기상환 대출로 바꿔주는 데 쓰인다. 학자금대출 부담 경감에도 쓰일 예정이다. 연체 채무를 사들여 원금의 50%까지 감면한 뒤 장기 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박 당선인이 밝힌 기금의 종잣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차입금 7000억원, 부실채권정리기금 3000억원, 신용회복기금 잔액 8700억원 등 1조8700억원이다. 이 돈을 기반으로 10배에 이르는 금액의 채권(공사채)을 발행하면 18조7000억원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금융위는 신용회복기금의 현금자산이 약 5500억원에 그치고, 부실채권정리기금은 청산 후 현금 등을 공적자금상환기금에 돌려줘야 해 재원이 크게 모자란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캠코 차입금 7000억원도 정부가 증자를 하지 않으면 캠코가 기존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있다.

채권 발행 과정에선 정부 보증이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정부만큼 믿을 만한 기관이 없어서다. 이 경우 부실이 발생했을 때 정부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만큼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도덕적 해이, 재정 부담 등 난제 많아=공약집에 명시된 행복기금 수혜 대상은 322만명이다. 제도권 금융채무 불이행자(126만명)를 모두 지원하더라도 200만명 가까운 사람이 더 혜택을 보게 된다. 이 때문에 대부업 연체자나 3개월 미만 연체자들도 지원 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시행 첫해 금융채무 불이행자의 연채채권 12조원을 사들이고 5년간 6만명씩 30만명을 더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난제가 많다. 먼저 기존 제도와의 형평성이 걸린다. 그동안 채무 불이행에 따른 손실을 채무자와 채권자가 나눠 부담했지만 행복기금은 빚을 탕감해 준다고만 할 뿐 당사자가 어떤 책임을 지는지 불분명하다. 이 때문에 혜택만 기대하고 책임은 도외시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빚을 성실하게 갚는 사람들이 역차별을 받는 문제도 발생한다.

또 재정에는 상당한 부담이 가중된다. 전문가들은 기금이 장기연체자나 다중채무자를 지원하는 만큼 어느 정도 부실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채무자 고통 경감보다 은행이 이득을 본다는 지적도 있다. 민간 금융회사가 감수해야 할 부실채권을 정부 보증기금으로 사들이기 때문에 은행은 손실이 줄어들 수 있다.

여기에다 빚의 악순환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금에 의존하면서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확산되면 정부 재정만 축날 수 있다.

강창욱 이경원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