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수위는 공무원 소신 발언 귀담아 들어야

입력 2013-01-14 18:31

공약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국민 편에서 업그레이드하라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수석 회의에서 “정권 인수인계 시기 어수선한 틈을 타서 부작용이 심각해질 수 있는 정책들을 각 부처에서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게 없는지 점검해 달라”고 지시했다. 청와대는 이 발언이 정권 말 행정 부처들이 기득권 지키기에 연연하거나 복지부동에 빠져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 이행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데 경고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인수위 업무보고 과정을 보면 정부조직 개편에서 제 밥그릇만 챙기려는 부처나 당선인의 공약에 부정적인 관료들의 반발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은 12일 “적극적 의지로 국민 입장에서 문제를 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과거 관행에 기대어 문제를 그대로 유지해가려는 부분에 대해 박 당선인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관료 사회를 향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역대 정권을 보면 정권 교체든, 정권 재창출이든 신구 정권 간 또 새 정권과 관료사회 사이에는 늘 갈등이 빚어졌다. 1998년 초 김대중 당선인 인수위 때는 안기부가 분과위원에 대한 보고를 거부해 이종찬 인수위원장이 보고를 받기로 협의가 이뤄지기까지 업무보고가 중단됐다. 2003년 노무현 인수위는 개혁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정부 곳곳과 마찰을 일으켰다. 노 당선인은 “정부 부처가 공약에 찬성한다, 반대한다며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그로부터 5년 뒤에는 이명박 당선인이 “반(反) 변화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직사회를 비판했다. 하지만 당시 국정홍보처 간부들은 업무보고에서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며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를 정당화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렇듯 새로 권력을 장악한 정치세력과 관료 사이에 마찰이 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히려 잡음이 아예 없는 게 위험한 징조다. 정권 인수 작업이 일방통행 식으로 이뤄지거나 보신에만 신경 쓰는 관리들이 직언을 피하게 되면 새 정권이 적기에 입에 쓴 좋은 약이나 아픈 예방주사를 맞을 기회를 놓치게 돼 국가가 장차 더 큰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치권력과 관료사회가 지나치게 대립하는 것은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선인 측은 고압적 자세로 공직자가 영혼을 버리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한 충정에서 나온 공직자의 발언이라면 중히 들어야 한다. 기존 공약에 너무 형식적으로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여건에 맞춰 국정전반을 살피는 폭넓은 시각으로 공약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관료사회도 차기 정권의 비전과 정책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여 새로운 국정철학이 반영된 새 정치가 펼쳐지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선거에서 반영된 민의를 존중하는 것은 공무원의 당연한 의무다. 정치권력이나 관료 모두 명심할 것은 논쟁하든 타협하든 국민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