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정태] 우울증 바로보기
입력 2013-01-14 18:31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마음의 감기’ 우울증이다.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해 다양한 인지·정신·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 우울증의 의학적 정의다. 분명한 원인은 아직 모른다. 한데 개인적 의지로 없앨 수는 없고 정신의학 전문가의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상당한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단다. 약물치료와 함께 정신치료적 접근을 요한다.
최근 백혈병으로 별세한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몇 차례 자살 기도까지 했으나 이를 극복한 뒤 우울증 환자들을 돕는 일에 힘써오다 유명을 달리했다. 미국의 26세 ‘천재 해커’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지난 1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우울증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환자도 계속 늘어나 전 세계 인구의 5%인 3억5000만명, 국내의 경우 57만명에 달한다. 삶에 대한 흥미를 상실해 무력감에 빠지는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살 또는 자살 시도로 이어진다.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 상식이다.
일상적 고통을 과대 포장
그런데 ‘우울증’이라는 ‘정신장애’가 만들어진 것이라면? 정신과 의사와 제약 회사들이 항우울제를 팔기 위해 편의상 만들어낸 질병으로, 정신건강 산업의 거짓 선전이라면?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무슨 소리냐며 일제히 들고 일어날 일이다. 하지만 ‘가짜 우울’의 저자인 미국 심리학자 에릭 메이젤은 “우울증은 없다. 그저 극심한 슬픔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라면 정상적으로 겪기 마련인 고통과 불행을 정신장애 증상으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이윤이 많이 남는 이름 짓기 게임일 뿐이니까.
신약 개발도 너무 쉽다. 실제 치료해야 할 질병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항우울제의 효과는? 대부분 플라시보 효과다. 물론 항우울제라는 ‘화학물질’이 기분을 바꿔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울증이 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날뛰는 코끼리를 진정제로 잠잠하게 만든 게 ‘광란장애’를 치료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란다. 결론은 이렇다. 설령 우울증이 치료됐다고 해서 삶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또 우울증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우리 모두는 더 불행해진다. 따라서 우울증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고, 삶을 직시해 효과적으로 헤쳐 나가라고 주문한다.
개인과 사회 함께 나서야
동의하든 안 하든 간에 이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울을 권하는 사회에 대한 경종이다. 우리 사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적지 않은 대중 스타들이 TV 토크쇼 등에 출연해 자신이 한때 우울증을 겪었음을 고백하는 게 유행이니 말이다. 시청자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사례를 부각시키고, 심지어 자살 충동이나 자살 시도 경험까지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일종의 사회병리 현상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의 자살이 ‘베르테르 효과’로 모방자살을 불러일으키듯 우울증도 바이러스처럼 퍼지면 ‘우울 사회’가 된다. 특히 감성적인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지대하다. ‘나도 우울증이 의심되는데 그렇다면 저 연예인처럼 따라 해볼까.’ 이렇게 무감각하게 생각할 법하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 조성민씨가 지난주 극단적 선택을 하자 자살자가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염성이 강한 자살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사회 전체의 관심과 각성이 요구되듯 우울증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도 필요하다. 아울러 우울과 자살에 이르는 병이 진학과 빈곤 및 공동체 해체 등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비롯되는 문제에 대한 진단도 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시각이다.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긍정적 사고야말로 근본 치료제다. 대화와 소통이 뒤따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게 긍정의 힘이다.
박정태 문화생활부장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