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부품 교체하듯 인공장기 시대 열린다… 심장박동 보조 장치·인공신장기 등 빠르게 진화

입력 2013-01-14 21:20


심장박동 보조 장치 ‘페이스메이커’, 혈액정화장치 인공신장기 등 고장이 난 생체 장기를 대신하게 할 목적으로 개발되는 인공장기가 과학기술 발달과 더불어 급속히 진화하고 있다. 최근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이영탁, 심장내과 전은석 교수팀이 연세대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장병철 교수팀에 이어 10여 년 만에 심실 보조 장치 이식에 성공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도 뇌사자 기증으로 이뤄지는 심장이식 외에도 인공심장이란 난치성 심장병 치료 수단을 하나 더 가질 수 있게 됐다.

의공학자들은 앞으로 10년 뒤쯤 자동차 부품처럼 갈아 끼우듯 병든 장기 대신 인공장기를 이식, 난치병의 일부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 진화한 생체 친화형 인공장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뇌사자가 기증하는 이식용 장기 부족 사태에 따른 문제점들도 적잖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빠르게 진화하는 주요 인공장기 개발 실태를 살펴본다.

◇10년 후에도 이식용 장기 부족할 듯=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총 2만2427명이었다. 반면 장기 기증 뇌사자 수는 2202명에 불과했다. 산술적으로 겨우 9.8%만이 이식 수술이 가능했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이식 희망자와 실제 이식이 이뤄진 통계를 볼 때 10년 뒤에도 이런 불균형 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앞으로 10년 후 장기이식술은 다양한 형태의 인공장기를 이용하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고려대 한국인공장기센터 선경 교수(흉부외과)는 “귀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장기이식이 필요하지만 마땅한 기증자가 없을 경우 인공장기가 임시 또는 반영구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실 보조 장치는 반영구 단계 진화=실제로 우리가 상상하는 인공장기 개발 기술은 이미 꽤 높은 수준까지 오른 상태다. 삼성서울병원 이영탁 교수팀이 최근 임상시험연구에 들어간 체내 이식형 심실 보조 장치도 10여 년 전부터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연구돼 온 인공심장의 일종으로, 현재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진화한 상태다.

그러나 이 장치는 실질적으로는 말기 심장병 환자에게 맞는 심장 기증 뇌사자가 나타날 때까지만 몸 안에 넣어두는 일종의 ‘임시대행’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사용 가능 기간은 평균 수개월에서 수년까지다. 예외적으로 9년 이상 생존하고 있는 환자가 있긴 해도 현재까진 심장이식을 받을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고자 할 때 사용되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심실 보조 장치는 199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미국 TCI사 제품이다. 그동안 약 3000명이 이 시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가운데 약 70%가 생존해 이미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거나 새 심장을 기증할 뇌사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중이다.

최근 이 교수팀이 배모(75)씨의 체내에 심은 심실 보조 장치는 미국의 또 다른 인공심장 제작업체 소라텍(thoratec)사가 만든 ‘하트 메이트’란 제품으로, 2008년 FDA의 시판 승인을 받았다. 미국의 딕 체니 전 부통령도 2010년 이 제품을 이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공심장은 좌우 심실 보조 장치가 결합돼야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완전한 형태를 갖춘 인공심장의 체내 이식은 크기를 줄여야 하는 기술적 문제 등으로 아직 동물실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선 서울대병원 의공학교실 박광석 교수팀과 고려대병원 선경 교수팀 등이 동물실험을 진행 중이다.

◇인공망막 개발은 해상도 향상이 관건=인공망막도 앞으로 기대가 큰 인공장기 중 하나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망막 및 시신경 분화 기술은 걸음마 단계여서 언제 가시화될지도 모르는 상태다. 반면 인공망막 제작 기술은 향후 10년 동안 큰 발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안과학계의 전망.

망막은 눈의 제일 안쪽에 위치한 얇은 신경막이다. 눈에 들어온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 바로 붙어 있는 시신경 다발을 통해 뇌에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흔히 카메라의 필름이 하는 일로 비유된다. 외부 충격이나 망막색소세포 이상 등 유전질환, 당뇨병성망막증, 망막박리, 노인성 황반변성 등으로 인해 망막에 문제가 발생하면 시력을 잃게 된다. 이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인공망막이다.

지금 개발되고 있는 인공망막은 특수재질로 만든 고분자막에 전극을 부착한 것으로, 망막신경세포를 자극하는 신호를 마치 자신의 본래 광(光)수용체 세포에서 발생한 전기신호처럼 인식하는 원리다. 현재 기술 수준은 눈앞의 움직임을 보고 사람 손 크기 정도의 형태를 알아보는 단계다.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안과 문정일 교수는 “실용화를 위해선 해상도를 더욱 높여 적어도 0.1 정도의 시력을 복원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며 10년 뒤에는 손가락 수를 분간하는 정도의 시력인 0.02 정도까지 관련 기술이 발전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생체신호 자동감지 바이오센서 개발이 핵심=인공 간과 인공 췌장 연구 역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인슐린을 공급하는 기계식 인공 췌장은 혈당 감지 센서, 인슐린 자동조절 주입 장치로 구성된다. 문제는 체내에서 오랫동안 자동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바이오센서 개발이 쉽지 않다는 점. 따라서 현재 상용화돼 있는 ‘인슐린 펌프’처럼 체외에서 혈당을 조절해야 하는 형태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인공 간은 난관이 더 많다. 쓸개즙을 만들고 양분을 저장, 해독하는 역할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효석, 외과 서경석 교수팀은 “간의 일부 해독기능을 대체하는 인공 간이 개발되고 있긴 하지만 실용화 단계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현재 간세포를 고농도로 생물반응기에 충전하고 인공신장기처럼 체외순환 형태로 환자의 혈장을 통과시켜 간 기능을 개선시키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고 밝혔다.

청력 보조 장치 인공와우, 사지절단장애인을 위한 전자의수족, 화상 환자를 위한 인공피부, 각종 혈관질환자들을 위한 인조혈관 및 인공혈액, 인공지능 뇌 연구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