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장기불황에 기업대출 옥죄기… 中企들 춥다
입력 2013-01-13 19:20
은행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출을 큰 폭으로 줄이고 있다. 장기 불황이라는 ‘폭우’를 만난 기업에서 우산을 뺏는 격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 활력을 위해 중소기업 활성화에 사활을 건 모습과는 정반대다. 중소기업들은 추락하는 환율에다 대출까지 어려워지면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이 589조원으로 지난해 11월 말보다 11조8000억원 줄었다고 13일 밝혔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이 크게 감소했다. 지난달 중소기업의 대출 잔액은 446조8000억원으로 전월보다 7조7000억원 줄었다.
대기업 대출은 전월 대비 4조1000억원 감소한 142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일단 기업 대출 급감에는 ‘연말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들이 연말에 부실채권을 대대적으로 정리한 데다 기업 부채비율 관리 등으로 전체 기업 대출이 대폭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면서 기업의 자금줄을 꽉 졸라매고 있다. 장기 불황으로 수익이 감소한 데다 새로운 수익원을 찾지 못하자 상대적으로 경기에 민감한 중소기업 대출부터 줄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은이 지난달 10일부터 24일까지 16개 국내은행 대출담당자를 조사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올 1분기 은행의 대출태도지수는 -2로 2009년 4분기(-4) 이후 3년 만에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대출태도지수는 숫자가 낮을수록 은행이 대출을 까다롭게 한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의 올 1분기 대출태도지수는 -3으로 전 분기보다 3포인트, 대기업은 -6으로 6포인트 떨어졌다.
은행들은 대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고, 위험업종 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기업 고객이 많은 우리은행은 최근 경기가 나쁜 조선·건설·부동산개발업의 대출 심사를 강화해 대출비중을 축소키로 했다. 환율에 민감한 업종은 심사를 더욱 꼼꼼히 해 부실 대출을 줄여나가고 있다.
하나은행은 성장이 어려운 업종의 대출을 줄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신한은행도 ‘리스크 관리 강화’를 올해 중점과제로 내걸고 자산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따른 세부 방안을 만들고 있다. 외환은행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해 집중 지원키로 하고 기업 신용평가 시스템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박 당선인이 중소기업을 강조하고 있어 각 은행이 여러 가지 지원책을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불황이 계속되고 수익까지 줄어드는 상황에서 당장 자산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 관련 대출을 까다롭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