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현미] 응답하라 결혼
입력 2013-01-13 19:19
후배 시인이 결혼을 한다. 한국 나이로 마흔. 언제부터인가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된 지 오래되었지만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으니 일단 후배의 결정을 축하하고 볼 일이다.
그런데 마냥 축하해주기에는 또 뭔가 흔쾌하지 않다.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이미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효력을 상실했다 하더라도 초혼인데 마흔이니 결혼-임신-출산-육아라는 보편적 형태의 결혼 생활을 꾸려가기란 아무래도 적당한 나이라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출산적령기라는 말까지 효력을 상실한 건 아니니 말이다.
후배에게 물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아야 할 나이(만 40세)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제 결혼하면 아이를 가질 계획은 있는 거냐고. 후배가 되물었다. “이 나이에 정규직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결혼을 선택한다는 것도 모험인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양육하겠다는 건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 아닌가?”라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도 마흔이 넘었는데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꽤 많다.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K처럼 여전히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J처럼 가난을 각오해야 하는 시인으로 살기로 결심하면서 결혼을 포기한 사람도 있을 테고,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결혼 제도에 맞서 신념을 갖고 독신을 선언한 경우도 있을 테고, 그냥 혼자 사는 게 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십대 초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양육하기 위해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내 경우에 비춰볼 때도 결혼하지 않은 그들의 삶이 딱히 더 불행한 것도 아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다 비슷비슷하게 불행하고 다 고만고만하게 행복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문제는 경제적인 이유이든 사회적 환경 때문이든 여러 가지 원인으로 비혼 인구가 점점 더 빠르게 늘어간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어서 머지않은 미래에 전 세계 1인 가구 수가 3억명을 넘을 전망이라고 한다.
반드시 ‘결혼한 삶’만이 정상적인 삶이라고 말하는 건 이제 촌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추세라면 보편적 삶의 한 형태였던 ‘결혼’마저도 지난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 콘텐츠로 호출돼 상업적으로만 소비되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를 일이다.
안현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