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국민 관심 외면하는 불통 인수위
입력 2013-01-13 19:18
‘밀봉’ ‘철통 보안’ ‘함구령’….
정보기관이나 군대에서나 들어볼 만한 단어들이 현재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입주해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일상적인 말이 됐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몰리는 인수위에서는 매일 취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말이 좋아 취재 전쟁이지 실제로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인수위와 정보를 캐내려는 기자들 간의 신경전이다.
인수위원들의 사무실과 행정실은 연수원 별관에 있고, 브리핑룸은 본관에 있어 기자들의 취재가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정부의 업무 보고도 별관에서 이뤄지고 모두 발언만 공개된다.
정보에 목마른 기자들은 출근하는 인수위원들로부터 한마디라도 들으려고 매일 아침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별관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린다. 하지만 쏟아지는 질문에도 인수위원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사무실로 향한다. 인수위원들은 기자들의 전화를 거의 받지 않고, 어렵게 통화가 돼도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자들은 인수위 대변인에게 항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인 출신인 윤창중 대변인조차 보안의 중요성만 강조할 뿐 국민의 알권리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윤 대변인은 11일 정부 업무보고 첫날 구체적인 보고 내용을 브리핑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설익은 정책이 보도되면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게 되고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밀봉’ 인사에 이은 ‘밀봉’ 브리핑에 기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중소기업 살리기와 튼튼한 안보, 복지 공약 이행을 강조했던 터라 국방부와 중소기업청, 보건복지부의 업무보고 내용은 국민과 언론의 큰 관심사였다. 하지만 인수위원 몇몇만 정보를 독점했다. 과거 인수위는 업무보고 내용을 대체로 상세히 브리핑했다. 언론들이 일제히 ‘불통’ 인수위가 국민여론과 언론의 정당한 검증 기회조차 박탈한다고 비판하자 인수위는 12일 “공개할 부분은 공개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하지만 언론의 불신은 여전하다.
이번 인수위가 ‘실무형 인수위’를 표방하며 조용하게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박 당선인이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다보니 인수위는 국민과의 소통에 소홀해졌다. 그 결과 차기 정부의 국정 과제를 수립하는 인수위의 활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철저히 외면 받고 있다. 인수위는 심지어 각 부처의 업무보고 참석자들에게 “돌아가서 업무보고와 관련한 브리핑을 절대 하지 말라” “친한 기자들에게 보고 내용을 흘리면 징계하겠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인수위가 정부 업무보고 내용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업무 보고는 현안이나 공약 이행에 대한 부처의 판단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수위의 최종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정부와 인수위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 혼란을 부추긴다고 인식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업무보고 단계에서 국민 여론을 청취하고 언론의 검증을 받을 수 있어 안정적인 국정과제 수립에 도움이 된다. ‘밀봉’ 브리핑은 공개·공유·협력을 정부 운영의 핵심 가치로 삼겠다는 박 당선인의 철학과도 배치된다.
인수위가 확실한 결론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과정이나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민대통합이 핵심 국정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반대편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노력은 절실히 요청된다.
김재중 정치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