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교과서 가격 자율화’ 손볼듯

입력 2013-01-14 10:47


이명박 정부의 ‘교과서 가격 자율화’ 정책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논의될지 주목된다. 새 학기를 앞두고 교과서 가격이 들썩일 조짐을 보이는 데다 가격 자율화 정책 자체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추구하는 방향과 여러 면에서 상충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교과서 가격 인상될 듯=2009년 도입된 ‘교과서 가격 자율화’의 핵심은 교과서 가격을 각 출판사가 정하도록 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가격 자율화로 교과서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이 정책에 대한 비판과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책값만 비싸졌지 교과서가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올해 출판사들이 교과서 가격을 대거 올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자율화’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출판사들의 동향과 부정적인 여론을 파악한 교과부가 나섰다. 김응권 1차관이 지난 8일 직접 출판사 대표 40여명을 불러 교과서 가격 인하를 주문했다. 하지만 출판사들이 정부 방침을 따를지, 거스를지 알 수 없다. 교과서 가격 조정 권한이 정부에 없기 때문이다.

◇민생에 어긋나는 예산 블랙홀=교과서 가격은 ‘자율화’ 도입 이후 해마다 인상됐다. 고교 국어(상)의 경우 2010년 1750원이던 게 지난해 3824원으로 배 이상이 됐다. 고교생 한 명이 학기당 교과서 마련에 드는 비용은 평균 8만원이다. 올해는 10만원이 넘을 수 있다. 서민에겐 부담이고, 박 당선인의 ‘민생’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교과서값이 현 추세대로 해마다 인상되면 정부 예산에도 큰 부담이 된다. 현재 초·중학교 교과서는 각 시·도 교육청이 학교에 사주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학부모 입장에선 무료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큰 짐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교과서 무상지원 예산은 지난해 518억원, 올해는 670억원이다.

박 당선인은 고교 무상교육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것이 지켜져 고교생에게도 교과서가 공짜로 주어지면 정부의 예산 부담은 훨씬 더 커진다. 다른 복지 공약으로 가뜩이나 재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인수위가 어떤 식으로든 교과서 가격 자율화 정책을 손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소한의 장치 있어야”=박 당선인의 교육 공약의 틀을 짠 영남대 김재춘 교수는 2009년 교과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일정 소득 이상 가정에는 교과서를 유상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과서 구입 예산을 줄이기 위해 “활용도가 낮은 교과서를 여러 명이 공동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교과서 자율화 정책을 인수위 업무보고에 포함할 계획은 없다. 인수위에서 지적이 있으면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홍후조(교육학) 교수는 “정부가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면서 ‘교과서 한 쪽 당 상한가 도입’을 대안으로 내놨다. 그는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지 못하면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