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지방은행 발달… 제조업의 ‘키다리 아저씨’

입력 2013-01-13 18:44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의 관심은 독일 금융산업에 쏠렸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음에도 독일은 2011년 수출 증가율 11.4%를 기록하는 등 견고한 성장세를 굳건히 해 왔다. 그 이면에는 금융산업의 역할이 지대했다. 미국과 영국 등 금융선진국은 금융산업을 ‘캐시카우(cash cow·수익창출원)’로 활용해 경제 성장을 이끌어왔다. 반면 독일은 철저히 제조업을 보좌하는 ‘키다리 아저씨’로 육성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금융이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금융 감독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독일의 은행 수는 2000여개로 인구 100만명당 은행 수가 25개에 달한다. 하지만 상위 5개 은행의 자산 비중은 22.0%로 EU 전체 평균(44.4%)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은행을 대형화하지 않고 지방 은행들을 골고루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영은행인 저축은행의 자산 비중이 33.7%로 상업은행(29.2%), 신용협동조합은행(12.5%)을 크게 웃돈다. 지방은행과 공영은행들은 중소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금융의 또 다른 특징은 장기 대출 위주로 기업 대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말 기준 독일의 총 대출금 대비 5년 이상 장기 대출 비중은 64.5%로 우리나라(15%)의 4배 이상이다. 장기 대출은 단기 성과주의를 배척하고 중소기업의 재무구조를 안정화시켜 지속적인 연구개발(R&D)과 고용창출을 가능케 한다. 독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운영 중인 주거래은행(주채권은행) 제도를 갖고 있다. 주거래은행들이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성장 기업을 적극 지원하면서 제조업의 황금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유로존 위기의 교훈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독일 기업들은 은행과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형성해 투자와 사업을 추진한다”면서 “은행수가 영국의 5배에 달하는 등 금융산업이 제조업 지원에 특화돼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든든한 자금줄을 확보하고 있는 덕에 독일 기업들은 자본시장에서 회사채 발행 등으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비율이 다른 국가보다 현저히 낮다. 독일의 채권시장 규모는 201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80.1% 수준으로 이탈리아(164.4%), 스페인(129.1%), 프랑스(111.8%)보다 작다. 채권 시장에서 공공기관 비중이 53.3%, 금융기관은 34.9%를 차지하지만 일반 기업의 회사채 비중은 11.8%에 불과하다.

GDP 대비 주식시장 규모 역시 28%로 프랑스(58%), 영국(88%), 미국(80%), 일본(61%)보다 현저히 낮다. 대신 대출금은 전체 기업 자금 조달의 절반이 넘는 53.5%에 해당한다. 2010년 3월 기준 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1조3271억 유로에 달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장기간 손쉽게 자금을 지원받기 때문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자금조달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강유덕 유럽팀장은 “독일은 산업자본과 은행, 기업, 노사간 협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장기 성장모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주거래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면서 안정적인 장기성장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