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구국운동 중심에 선 교회여성들… 새문안교회 ‘교회여성 110년사’ 발간

입력 2013-01-13 20:13


‘한강의 보강리 례배당을 부흥케 하기 위하야 본회 부인전도회에 교섭하야 쥬일 젼도인 파송하기로 동의 가결하다….’

지금으로부터 92년 전인 1921년 9월 26일 새문안교회 당회록에 남아 있는 교회 여신도들의 활동상이다. 이웃 교회의 부흥을 위해 여성 전도대원을 파송하기로 당회에서 결정했다는 내용이다.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인 서울 새문안교회(이수영 목사)의 여성사(史)를 담은 ‘새문안교회 여성 110년사(1887∼1997)’가 세상에 나왔다.

250여 쪽에 달하는 책자는 새문안교회 여성들의 활동을 통해 한국교회 초기 개화기 신여성들의 교회 사역과 일제강점기 시절의 구국운동을 중심으로 지난 한 세기의 한국교회 여성 활약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할 만하다.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창립됐지만 남녀가 함께 예배드릴 수 있었던 건 8년 뒤인 1895년부터다. 이마저도 칸막이가 세워진 ‘남녀유별’한 예배였다. 1920년대부터 새문안교회 여신도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새문안교회 여성사편찬위원회 이숭리(66) 편찬위원은 “여성들에 대해 억압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 할머니들은 스스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거의 가져본 적이 없었다”면서 “그런데 교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평생 들어보지 못한 얘기를 듣게 되니까 너도 나도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1922년부터 5년 동안 새문안교회 부인전도회를 이끌었던 고 김진애 회장의 일화는 유명하다. 김 회장은 당시 가부장적인 시집살이에 반기를 들고 “교회에 보내주지 않으면 차라리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겠다”고 버틴 끝에 결국 신앙의 자유를 얻어냈는데, 그 얘기가 그의 손녀 김정림(80·새문안교회) 공로권사를 통해 지금까지 회자된다.

새문안교회에 꾸려진 부인 전도회의 활약상은 유명하다. 성도 심방과 교회 증축 재정지원, 수재의연금 모금 등을 도맡았다. 일제 수탈정책에 맞서 절제·금주운동, 공창폐지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1933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최초로 여성안수청원을 교단 총회에 제출한 103명 서명자의 주축도 새문안교회 부인 전도회원들이었다. 1955년 장로교에서 처음 생긴 ‘권사’ 제도 역시 7년 전인 1948년 12월 새문안교회에서 명예전도사의 개칭을 통해 이미 도입됐다.

1987년부터 준비한 새문안교회 여성 110년사 발간작업은 25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초창기 힘을 쏟았던 전임 편찬위원장이 소천하는가 하면 여성 관련 자료 수집이 여의치 않아 작업에 속도가 나지 않았기 때문. 현 편찬위원장인 송순옥(84) 권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결국 귀한 역사를 후대에 남길 수 있어 감사할 뿐”이라며 “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아 교회 여성들의 독특한 에너지를 교회와 사회에 긍정적으로 발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