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2부) 5년, 새 정부의 과제] 獨 노사 ‘상생의 길’ 실천
입력 2013-01-14 00:45
④ 일자리 지키기
남유럽이 대량 실업사태에 허덕이고 있다. 프랑스도 폭동을 겪을 만큼 청년 실업이 심각한 상황이다. 유독 독일만 통일 이후 최고 수준의 고용 호조를 만끽하고 있다. 세계는 이를 ‘고용 기적’이라고 부른다. 독일의 승승장구를 뒷받침한 정책은 ‘일자리 지키기’다. 불황이 불어닥쳤지만 기업들은 정리해고 대신 근로시간 단축에 나섰고 정부는 삭감된 임금의 상당 부분을 보전해주며 숙련 인력을 보호했다.
◇독일의 고용 기적= 13일 현재 독일의 국가신용등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Aaa), S&P(AAA), 피치(AAA) 모두 최고 등급을 부여했다. 향후 전망도 무디스만 제외하면 모두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유럽위원회에 따르면 독일의 GDP성장률은 2009년 -5.1%였지만 2010년 4.2%, 2011년 3.0%로 완연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재정위기로 유럽전체가 홍역을 앓으며 유로존 국가 평균 성장률이 -0.4%를 기록했던 지난해에도 독일은 0.8% 성장을 기록했다.
2005년 11.2%로 최고치였던 독일의 실업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후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지난해엔 5.5%로 유로존 평균(11.3%)의 절반도 안 되는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다.
독일의 고용률은 2005년 이후 꾸준히 상승했고, 비경제활동인구와 청년실업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고용호조세를 이어갔다. 2000년 65.6%에 그쳤던 고용률은 2011년 76.3%로 높아졌다. 여성 고용률도 같은 기간 58.1%에서 71.1%로 높아졌다.
고용의 질적 개선도 함께 이뤄졌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문직에 종사하는 취업자는 1992년 33%에서 2011년 42%로 크게 늘었다. 특히 여성 근로자 중 전문직 비율은 45%에 이를 정도로 여성의 전문직 진출이 활발해졌다. 교육과 의료 지원 분야에 여성 근로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성이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을 경험하면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일자리를 갖게 되는 한국 상황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사무소는 “독일 고용시장의 호조는 경기 여건 외에도 고용 유연성 확대 등 제도적 요인, 임금 안정과 인구구조 변화 등에 따른 기업의 선제적 고용 확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어떻게 일자리를 지켰나= 독일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2008∼2009년 경기 둔화기에 근로시간단축제도를 이용해 해고 없이 인력을 비축했다.
근로시간단축제도는 경기침체로 고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해고 대신 한시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면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근로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면 삭감된 인금의 60%(가장일 경우 67%)를 연방노동청이 지급했다.
이 밖에도 잔업축소, 근로시간계좌제 이용 등을 통해 예전보다 탄력적으로 기업 내에서 근로시간을 조정했다. 독일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 감소를 일시적인 외부충격으로 규정하고 노동시간 축소와 생산성 하락을 감수하면서 인력을 유지했다. 이들은 2003년 IT 거품 붕괴 시기에 인력을 감축했다가 2006∼2008년 경기회복기에 숙련근로자를 채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을 결코 잊지 않았다.
정부가 각종 개혁정책으로 고용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기틀과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도 고용기적의 밑거름으로 평가된다. 2020년의 취업가능인구(20∼50세)가 2008년에 비해 540만명이나 줄어들 것으로 전망돼 기업들이 청·장년 근로자 확보에 발 벗고 나선 점도 독일 고용을 이끌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가장 빠르다.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1955∼63년생)들이 자영업으로 내몰리면서 창업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를 정도가 됐지만 우리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변변한 인력 수급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독일 노조들은 임금 상승보다는 고용안정을 우선시하며 ‘함께 사는 길’을 선택했다. 2000년 이후 독일의 명목임금 상승률은 연 평균 1.2%에 머무르고 있다. 독일연방은행의 실증분석 결과 임금이 1% 하락하면 고용이 단기적으로는 0.7%, 장기적으로는 약 1.2%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독일 헤르본에 있는 리탈사의 볼프람 에버하르트(Wolfram Eberhardt) 홍보총괄 이사는 “위기가 닥쳤던 2009년 인력을 최대한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경영했다”며 “인력을 퇴출시키면 향후 호황기에 신규인력을 채용하고 교육시키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했던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했다. 리탈사는 대형 컴퓨터 등의 공기와 전력을 제어하는 ‘인클로저시스템(Enclosure System)’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인천 송도에 미화 1000만 달러 규모의 연구개발 센터 건립에도 투자했다.
선정수 기자, 헤르본=한장희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