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방에 앉아 도란도란 마음을 열고 그냥 놀다 가세요… 설치작가 전수천 소통 주제 기획전
입력 2013-01-13 18:07
설치작가 전수천(65)은 1995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설치한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특별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섰다. 이듬해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아시아 대표작가로 참가한 그는 이후 ‘한강 수상 드로잉’(1989)과 ‘미 대륙 횡단 열차의 움직이는 드로잉’(2005) 등 대규모 프로젝트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최근 이렇다 할 작업이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열정이 식어버린 것일까. 그런 그가 새해 들어 서울 번동 꿈의숲아트센터 드림갤러리에서 ‘전수천의 사회 읽기’라는 타이틀로 기획전을 갖는다. ‘소통’을 주제로 한 설치작품 4점과 사진 9점을 18일부터 3월 3일까지 선보인다. 도심의 미술관도 아니고 변두리의 소소한 갤러리에서 전시를 여는 이유가 무엇일까.
“몇 년 전 전북 임실에 작업실을 마련했는데, 이곳 주민들에게 문화 향유는 꿈같은 얘기더군요. 드림갤러리가 있는 곳도 문화 소외 지역으로 제가 할 일이 있겠다 싶었죠.” 꿈의숲아트센터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복합예술공간이다. 작가가 지난해 서울시 신청사 로비에 조형물 ‘메타 서사-서벌’을 설치한 것을 계기로 이번 전시가 추진됐다고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온돌방-소통의 시작’이라는 설치작품이 손짓한다. 온돌방은 한국인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순간순간이 깃든 공간이다. 밖에 나갔던 가족들이 집에 들어와 함께 모이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런 온돌방을 전시장에 옮겨 왔다. 관람객들이 다른 사람들과 온돌방에서 둘러 앉아 머리와 가슴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공간에는 ‘주식을 세단하다’라는 제목의 설치작품이 전시된다. 세단기 앞에 주식 시세 인쇄용지가 얇게 잘린 채 놓여 있는 작품으로 주식 등락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주변에 의외로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결국에 웃는 사람은 별로 없고 탄식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아 이런 얘기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주식값이 프린트된 풍선들을 설치하고 주가에 따라 업다운되는 사람들의 스냅 사진을 프로젝터로 비추는 ‘꿈의 모습-어떤 단편’, 옛 전화 교환대를 통해 대화의 의미를 모색해보는 ‘소통일까 욕망일까!’, 숨을 쉬는 방과 호흡이 멈춘 방을 나란히 배치한 ‘들숨과 날숨’, 생화와 조화를 섞어 사진에 담은 ‘사물의 차이 읽기’ 등이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지내던 시절,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과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그는 “아무리 3류 화랑이더라도 전시를 요청할 경우 할 수 있으면 응해줘야 한다고 강조한 선생님의 얘기가 선하다”고 회상했다. 전시는 ‘전체 관람가’이지만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는 “결국엔 사람 사는 얘기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그냥 논다는 생각으로 관람할 것”을 주문했다.
향후 구상 중인 작업에 대해 그는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가는 열차 횡단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언론에서 좀 많이 도와 달라”고 말했다(02-2289-540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