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전시-‘보자기, 마음의 기하학’ 전] 실용+멋, 전통의 재발견
입력 2013-01-13 18:07
“우리의 보자기에는 몬드리안이 있고 폴 클레도 있다. 현대적 조형감각을 유럽을 훨씬 앞질러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 표정은 그지없이 담담하다. 마치 잘 갠 우리의 가을 하늘처럼 신선하다. 우리 배달겨레의 예술감각이요 생활감정이다. 거기에는 기하학적 구도와 선이 있고 콜라주의 기법이 있다.” 김춘수(1922∼2004) 시인이 ‘보자기의 미학’에 대해 쓴 글의 일부다.
예로부터 비단, 모시, 삼베 등 가벼운 직물로 보자기를 만들어 물건을 덮거나 싸는 데 썼다. 이름 모를 옛 여인들이 섬세한 손길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보자기.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 실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다. 쓰고 남은 작은 조각 천을 이어붙인 까닭에 어느 것 하나 똑같은 작품이 없을 만큼 독창적이고 다양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이 새해 첫 전시로 23일까지 우리 전통 보자기를 소개하는 ‘보자기, 마음의 기하학’ 전을 연다. 지난해 말 백년해로의 뜻을 담은 ‘목안(木雁), 꿈을 그리다’에 이은 기획전으로 ‘설악산 작가’ 김종학(76) 화백이 50년 가까이 모은 전통 보자기 150여점 가운데 모시 및 비단 조각보 35점을 추렸다. 모던한 전시 공간에 놓인 조각보가 단아하다.
천연 염색으로 색을 들인 모시 조각보는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은 작품도 있지만 은은하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비단 조각을 이어붙인 보자기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 때문에 화면을 가득 채운 김 화백의 꽃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보자기에 물건을 싸 두는 것은 복(福)을 싸 둔다는 뜻으로 통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취지를 담은 전시다(02-542-5543).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