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발견] (2) 커피믹스
입력 2013-01-13 18:58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다. 디자이너도 예외가 아니어서 허름한 스튜디오라도 컴퓨터 옆에 드립 커피가 놓여 있기 마련이다. 늦은 밤까지 작업하느라 카페인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이들의 취향인 것은 분명하다. 커피맛에 민감해져서 커피콩을 직접 볶기까지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알고 보면 국내 커피 소비의 90%가 인스턴트커피이고, 그중에서도 커피믹스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개인의 몫은 기껏 막대형 포장지 끝자락을 쥐어서 설탕의 양을 조절하는 정도다.
각종 커피믹스의 겉포장에는 늘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연예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상투적인 이미지는 커피믹스가 갖고 있는 표준화를 암시하고 있다. 가장 개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입맛까지도 비슷해져 온 국민이 아침점심으로 하나의 맛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취향의 표준화와 산업화는 이미 조미료와 패스트푸드에서 겪은 바 있다.
디자인은 이미지와 사물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늘 창의적인 것을 만들려고 하지만 대량 생산과 소비를 거쳐 결국 커피믹스에서 보듯 일률적인 맛이 만들어졌다. 일상에서 개인의 취향을 고려할 여유가 없는 탓에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커피믹스를 마신다.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