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방송 바쁘죠 하지만 진짜 내 자리는 공연장… 24시간이 모자란 음악 슈퍼바이저 박칼린

입력 2013-01-13 17:42


박칼린(46). 그는 우리 뮤지컬계에 가장 ‘핫’한 인물이다. 배우의 연기가 아닌 그의 지휘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팬이 있을 정도. 그는 요즘 바쁘다.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이다’의 국내협력 연출 겸 음악 슈퍼바이저로 거의 매일 지휘를 맡고 있다. 원래 지휘는 음악 감독의 몫인데 ‘팬 서비스’ 차원에서 지휘봉을 잡은 것. 다음 작품인 영국 뮤지컬 ‘고스트’ 오디션도 진행 중이다. 최근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으로도 임명됐다.

지난 9일 ‘아이다’가 공연 중인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얼굴엔 ‘요즘 너무 바쁘고 정신없다’고 써 있는 듯했다. 항상 일을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재미로 여기는 그였지만, 2013년 첫 달은 분주해보였다.

인터뷰에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아이다’ 얘기부터 해야 했다. ‘아이다’는 누비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인 암네리스, 이 두 여인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라다메스 장군의 사랑이야기다.

2005년 첫 공연된 후 이번이 세 번째. 박칼린이 생각하는 ‘아이다’의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대본이 좋다. 뺄 수 있는 문장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시간을 때우거나 웃기라고 넣는 대사가 없을 정도로 잘 짜여 있다. 현대적이면서도 고대 이집트의 분위기가 나는 음악과 의상, 그리고 사랑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용서하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 공연 때는 지휘를 하루도 안 빠졌다. 1년에 279회 했다. 사실 똑같은 작업이라 지루할 때도 있다. 가끔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오늘은 진짜 지휘 못하겠다, 뭐 이런 거.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게 별로 없다.

이번 ‘아이다’에서 가장 먼저 손 본 것은 대본이다. 몇 번 하다보니 우리 식대로 가사를 고치겠다는 ‘말발’이 통했다. 번역스타일을 잡아내고, 노래 가사에서 단어 하나만 고쳐도 느낌이 확 달라진다.

그가 지휘자로서 꼽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마지막이다.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무덤에 들어갈 때 중간에 네모로 돼 있는 무대가 점점 좁아진다. 무대장치인 기계, 배우의 감정, 음악의 강약을 미리 계산해 연주해야 하는 장면이다. 여운이 남게 잘 끝나면 객석에서는 안 보이는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연주자들끼리 눈물도 흘리고 박수도 친다. 눈빛으로 “오늘 최고야”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아이다’ 역에는 소냐와 차지연이 더블 캐스팅됐다. 배우는 체력과 자기관리가 중요하다. 무대에 선다는 것은 관객과의 약속이자 동료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몇 개월 동안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감기도 걸리면 안 될 정도로 긴장하고 살아야 한다. 최근 차지연이 독감으로 무대에 서지 못한 것을 빗댄 얘기다.

그는 뮤지컬뿐 아니라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다. 국악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다. 예술은 창의력을 발휘하고 남이 아닌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분야. 각기 표현방법은 달라도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박칼린은 극장에 오는 게 제일 편하다. 학교 강단에도 서고, 레슨도 하고, 방송에도 간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는 공연장이다. 최근 입문한 정치 얘기를 꺼내자 입에 지퍼를 채웠다는 시늉을 한다. 인터뷰 전 공언했듯이 정치 얘기는 일체 안하겠다는 뜻.

박칼린은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엄마 밑에서 자랐다. 연년생인 두 언니가 있는 막내딸이다. 부모님에 대해서는 생명력이 강하고 뭐든 자식들이 경험하고 느껴보게 하고 스스로 결정하게 만드는 분이라고 말했다. 말에 이유가 있어야 하고, 예의와 도덕을 중시하고, 자립성을 강조하셨다고 덧붙였다.

아직 싱글. 이상형을 물었다. 외모와 학력 절대 안 본다. 그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보다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본다. 예컨대 구두를 닦아도, 설거지 하나를 해도 대충대충 하지 않는, 작은 일이라도 즐기는 사람이 좋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무대는 라이브다.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거나 상상과 다를 수도 있다. ‘퍼펙트 아트’가 아니라 ‘퍼포밍 아트’다.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라이브의 매력인데 그걸 이해 못 해주는 관객들이 있더라. 무대를 준비하는 제작진과 배우를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