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길을 묻다] (3)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입력 2013-01-13 19:26
“긍휼·관용·사랑 초대교회의 삶 배워 세상에 본 돼야”
한국 최초의 기독교교육학 박사로 일평생 후학들을 가르쳤던 주선애(90) 장신대 명예교수. 온누리교회를 창립한 고 하용조 목사 등 장신대 출신 수많은 목회자들은 자랑스레 그녀를 ‘인생의 스승’이라고 불렀다. 탈북자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탈북자들은 그녀를 ‘교수 어머니’라며 따랐다. 장신대에서 은퇴한 지 24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으로 스승을 찾기 힘든 이 시대의 큰 선생님으로 남아 있다. 최근 서울 길동 자택에서 만난 주 명예교수는 크리스천들은 세상 풍조에 저항하며 죽기까지 자기와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올해 한국 나이로 아흔살이 됐습니다. 그래도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활동하라고 건강을 주셨습니다. 골다공증이 있고 허리가 아프지만 특별한 지병은 없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쉽진 않지요. 걸으면 다리가 아파요. 제 나이가 되면 ‘비정상이 정상’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지요.”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가르쳤고 수많은 목회자 제자들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를 진단해 주시지요.
“한국교회는 이미 침체의 초입에 들어갔습니다. 유럽 교회를 따라가고 있어요. 아무래도 초대교회와 같은 생명력이 약해졌습니다. 뭔가 핵심이 빠진 것 같아요. 대부분이 그것을 느끼지 않나요? 십자가에서 용서받은 감격으로 봉사하고 섬기며 예배드리는 부분이 많이 약화됐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너무나 편안하고,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부흥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 부흥을 어떤 방법으로 이뤄야 하는가가 문제지요.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 지도자들부터 새로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역동성과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도자의 책임이 큽니다. 지도자들이 좀더 깊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도처에서 말씀은 흔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사람들의 심령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삶이 병행되지 않은 말씀은 결코 힘 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기준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이 사회의 작은 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 말하지만 진정한 중심의 마음가짐에는 자기 욕망이 들어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지닌 긍휼의 마음을 갖고 사람들을 섬기겠다는 진정한 마음의 혁신이 일어날 때에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역동성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모두가 근본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과연 우리가 돌아갈 근본은 무엇인가요.
“저는 초대교회에서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크리스천들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 시절의 기독인들의 이미지가 이 시대에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 생기고 래디컬(급진)적으로 불쌍한 사람을 끌어안으며 관용과 사랑의 덕을 생활 속에서 삶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그 삶이 바로 전도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 기독교인들은 뭔가 다르다. 가치관과 삶이 다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라며 궁금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 외에 세상과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삶으로 우리를 보여주지 않는 한 이 사회는 결코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는 순례자라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살다가’ 언젠가는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갈 나그네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세상에서 마음이 떠난 사람들이 크리스천들입니다. 신자에게 이 땅에는 고향이 없습니다. 순례자 의식, 거류민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와 같은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런 순례자 의식을 갖고 살기가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 정체성, 즉 제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예수의 제자’라는 확고한 자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생활 전반에서 모든 가치를 주님께 맞춰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제자라면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물질에 너무 매여 있다보면 그런 제자의식을 갖기 힘듭니다.”
-우리가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을 새롭게 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모양만 본받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에서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자꾸 세상 흐름을 따르다보면 경제와 소비가 최고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거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탐심과 세상 영화, 명예욕, 세상 정욕을 제거하기 위해 나와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려는 자기에게 통렬한 비수를 꽂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새롭게 해서 돌이켜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주십시오. 주십시오’하면서 구하지만 말고 내 속의 죄, 세상을 향한 욕심과 싸울 힘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악의 세력이 강한데도 싸움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싸워야 합니다.”
-대부분이 그 싸움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것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움을 회피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다보니 좀더 편안해지고 싶습니다. 세상적으로도 할 만큼 다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나이가 아흔입니다. 저도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고요. 82세까지 직접 운전을 했습니다. 걸으면 다리가 아파 이제는 운전기사를 두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생활비를 아껴서라도 탈북여성들 구출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태야지요. 요즘 너무나 춥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괴롭습니다. 나는 따뜻한 방에서 잤는데 어젯밤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서 땔감도 없는 북한 동포들이 제대로 잤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고 괴롭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안일함과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다보니 몇 년 남지 않은 이 생을 여행이나 다니면서 즐기다 보낼 수는 없다는 강한 마음이 듭니다.”
-주 명예교수님은 기도의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기를 부어주셔서 우리 영이 하나님의 영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하는 것도 기도의 일종이지만 정말 깊은 기도는 영과 영이 교제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주님 사랑을 느끼다보면 ‘정말 나는 이 땅에서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의 세계가 나의 영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지요.”
-통일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통일은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은혜를 통해서 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개인적·교회적·국가적 노력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복음적인 통일을 꿈꿔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통일 비용도 마련하고 통일연습도 하며 이미 이 땅에 들어온 탈북동포들을 품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신자’는 북한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탈북자들을 돕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탈북자들이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 교회 재건을 위해 헌신하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바라고 싶은 것은 탈북자 지도자 양성에 힘을 써달라는 것입니다.”
-주 명예교수님에게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가서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다 이뤄지는 것입니다. 결국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충성밖에 없습니다. 제게 주신 것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것을 갖고 최선 다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충성스레 해야 합니다.”
-이 땅의 목회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본이 되는 지도자가 되십시오. 본이 되기 위해서는 특권을 누릴 수 있더라도 그 특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이 세상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찾아 거기에 인생을 바치기로 작정한 분들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거기에 관심도 없어야 합니다.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합니다. 대형 교회 목회를 하더라도 좀 더 작은 차를 타시기 바랍니다. 내용이 차면 껍데기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용이 차지 않은 사람들은 외면을 꾸밉니다. 자기 몸도, 교회도 꾸며야 합니다. 목회자들도 한 시대 사용 받다가 모두 고향집에 갈 나그네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앞으로 ‘저 목사님 참 이상하게 산다’며 이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목회자들이 많이 나오기 바랍니다.”
◇주선애 교수=1924년 평양 출생. 평양신학교와 장신대 등을 거쳐 뉴욕대학교 종교교육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우리나라 기독교 교육의 기초를 놓고 많은 목회자와 학자, 교사들을 길러낸 최초의 여성 기독교교육학 교수다. 1966년부터 1989년까지 장신대에서 가르쳤고 은퇴 이후에는 탈북자 지원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2011년에 한국 YWCA로부터 제9회 한국 여성지도자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장로교 여성사’ ‘주님과 한평생’ 등이 있다.
만난사람=이태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