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연예병사의 세계] 명백한 특혜, 놀고 먹는 ‘땡땡이’-가혹한 매도, 밤낮 없이 ‘뺑뺑이’
입력 2013-01-11 17:59
군 복무 중인 가수 비(본명 정지훈)의 연애사건으로 국방부 홍보지원대원(연예병사)의 특혜 논란이 거세다. 연예인이어서 일반 병사보다 더 많은 휴가를 즐기고 고된 훈련도 면제돼 ‘특권층’이란 비판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형태가 다를 뿐 마냥 ‘꽃보직’이라 매도할 건 아니라는 동정론도 없지 않다. 연예병사는 도대체 어떻게 생활하기에 이런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일까.
“육군 신병훈련소 조교를 하던 비가 왜 연예병사가 됐겠어요. 편해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어느 방송국 PD의 말처럼 다들 연예병사는 일반 병사보다 훨씬 편하다고 생각한다. 연예병사의 정식 명칭은 국방홍보지원대원. 서울 용산동 국방부 근무지원단 소속이다. 숙소는 국방부 영내에 있지만 국방부에서 차로 15분쯤 걸리는 국방홍보원에서 주로 지낸다. 홍보원의 국군방송(라디오)과 국군TV방송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리포터로 활동한다.
홍보지원대 정원은 20명인데 현재 16명이 근무 중이다. 2011년 5월 입대한 탤런트 임주환 병장은 국방홍보원의 대표 프로그램 ‘위문열차’ 진행을 맡고 있다. 같은 해 7월 입대한 탤런트 김재욱 상병은 국군방송의 ‘주고 싶은 마음, 듣고 싶은 마음’을 진행하고, 지난해 6월 입대한 배우 이준혁은 ‘군대 재발견’ 리포터다.
오전 6시 기상해 하루 종일 근무와 훈련, 교육을 받는 일반 병사와 달리 이들의 생활은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 아침에는 국방부가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함께 출근하지만 귀대 시간은 제각각이다. 공무수행 중이어서 친구나 애인을 만나는 등 사적인 접촉은 금지돼 있고 개인 볼일로 돌아다닐 수도 없다. 규정은 그렇다.
이들을 통제하는 관리자는 단 1명이다. 대원마다 부대 복귀시간이 제각각인 데다 행사 출연을 위한 노래연습과 안무연습이 수시로 잡혀 관리자가 매번 동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규정을 지키는 문제는 연예병사 개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실정이다.
마음만 먹으면 오가며 개인적인 일을 보거나 지인을 만나는 것도 가능하다. 연습 중 연락이 안 되거나 공연 도중 사라져버려 군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다. “몸이 아프다”며 공연을 기피하거나 “왜 내가 해야 하느냐”며 반발하기도 한다. 휴가도 일반 병사보다 배 이상 많다. 주로 공연 후 포상휴가다. 2011년 8월 제대한 MC 겸 가수 붐(본명 이민호)은 150일이나 휴가를 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연예병사의 고충도 적지 않다. 우선 일이 많다. 이들이 소화해야 하는 공연·행사는 연간 100건이 넘는다. 전국 부대를 순회하는 국방홍보원의 대표 프로그램 ‘위문열차’ 참여는 필수다. 거의 매번 지방에서 열려 적어도 이틀은 꼬박 투자해야 한다. 이 공연은 지난해 53차례 열렸다. 또 ‘국군의 날’ 행사, 부대별 음악회 등 군 자체 행사가 21차례, 지방자치단체와 군이 공동 주관하는 행사도 31차례 열려 연예병사들이 출연했다.
여기에 병무청과 국가보훈처 행사가 8차례 있었고 한·베트남 수교 20주년 행사에도 동원됐다. 군 창작뮤지컬을 위해서는 몇 달간 매일 연습해야 한다. 공연이 밤늦게 끝나 자정이 돼서 생활관에 복귀하기도 하고 주말·휴일 공연으로 쉬지 못할 때도 많다. 성실한 연예병사로 칭송 받은 가수 박효신은 링거를 맞아가며 공연하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도 스트레스다. 국방홍보원에 연습실이 없어 매번 외부 연습실을 빌려 써야 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밤 시간을 주로 이용한다. 이 때문에 연습실에서 자기 일쑤다. 음향시설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공연하는 경우도 많다. 군 관계자는 “잘못하면 ‘군기 빠졌다’ ‘군에 오니 제 실력 드러난다’는 비아냥거림을 받거나 경력에도 흠집이 날 수 있어 공연 때마다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국방부로서는 연예병사의 존재가 고맙다. 비싼 출연료를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월 9만원 정도의 사병 월급만 지급하고 톱스타들을 활용할 수 있다. 이들이 뜨면 장병들은 물론 시민 호응도 높아진다. 국방홍보원이 지난해 6∼8월 실시한 위문열차 만족도 조사에서 ‘군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는 응답은 93%에 달했고 ‘연예병사에 대한 만족도’도 91%나 됐다. 공연 수준을 높여 군 이미지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들이 출연한 군 창작뮤지컬은 일반 관객들에게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 연예인 특혜라는 비판에도 연예병사가 없어지기 힘든 이유다.
대중문화평론가 이광택 경희대 교수는 11일 “무조건 연예병사를 비판할 게 아니라 국방부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