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이지현] 애도자를 위하여
입력 2013-01-11 17:30
만일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맛볼 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죽는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산산이 부서지며 새로운 지향점을 필요로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되는 것이다.
오랜 투병생활을 지켜본 가족들은 ‘불안 완화 작업’이라고 불리는 ‘예비애도’의 과정을 거치지만 상실의 아픔은 여전히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이런 애도자들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 당황한다. 어설픈 위로의 말이 상처가 될까봐 애도자를 멀리하면서 당혹스런 상황만은 피하려 하다. 이렇게 되면 애도자는 더 이상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독감이 더해진다. 애도자의 감정은 세상에서 소외된 자의 감정과 동일하다. 엄밀히 말해 죽은자가 소외된 것이 아니라, 애도자가 죽은자와 함께 세상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위로자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애도자가 화를 내거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때 위로자는 애도자의 체험만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진실로 함께하고자 해야지 위로자 자신의 애도 체험을 거론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는 슬픔을 빨리 극복하는 것을 강자의 특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루빨리 아픔을 극복하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애도의 감정이 억압되면 이해할 수 없는 우울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애도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울증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상실의 체험이 강렬할수록, 그것과 관련된 공격성이 억압될수록, 다루지 못한 갈등이 많을수록, 갈등을 감내할 수 있는 자아의 능력이 부족할수록 우울의 반응은 병리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애도는 더 이상 약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신건강에 중요한 심리적 과정으로 이해돼야 한다. 애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하고 간혹 무너질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슬픔 속에서 속히 빠져나오려고 애쓰지 말라고. 분노와 통곡, 혹은 원망 그밖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감정을 다 드러내라고….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