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칼럼] 새해엔 악순환의 고리 끊고 선순환으로
입력 2013-01-11 17:30
현대 성경해석학의 발견 중에 해석의 순환(hermeneutical circle)이 있다. 이것의 핵심 개념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해석할 때 먼저 선입견으로 보고 그 이후에 자신의 선입견을 계속 강화하는 쪽으로 모든 데이터를 해석해 간다는 것이다. 예로서 어떤 사람이 세례 문답을 하는데 목사가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교회가 믿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믿습니까?”라고 다시 물으면, “교회는 제가 믿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답한다. 이것은 완벽한 순환 논법이다.
사실 해석의 순환은 단순한 반복으로 그치지 않고 점점 더 심화되는 쪽으로 나아간다. 학자들은 이것을 해석의 나선형(hermeneutical spiral)이라고 한다. 즉 해석 작업은 단지 다람쥐 쳇바퀴 굴러 가듯이 그저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용수철처럼 강력한 탄력과 관성을 가지고 점점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예로서 우리가 어떤 개인이나 계층이나 피부색이나 종교를 부정적으로 보기로 작정하고 나면 계속 부정적인 것만 보이게 되고 결국에는 모욕적인 용어로 폄하하게 된다. 심각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교주의 모든 말들을 거의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이단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되어 많은 문제들이 터져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선순환의 과정도 나선형으로 심화된다. 옛날 다윗은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는 사울을 용서하여 통일 왕조의 기틀을 쌓았다. 우리 역사에서 김유신은 젊은 시절 방탕한 삶을 살다가 자신의 애마의 목을 친 후 삼국통일을 향한 새로운 삶의 순환을 만든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문학에서는 장발장이 한 번의 은총 사건으로 인생 전체를 선순환으로 넘어가는 대역전을 만든다. 현대의 역사에서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27년간 감옥에서 살았지만 분노를 극복하고 화해의 메시지로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만들었다.
제임스 로빈슨은 ‘왜 나라들이 망하는가’(2012)라는 책에서 잘 사는 나라는 계속 잘 살게 되고, 못 사는 나라는 계속 더 깊은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역사적인 순환의 법칙을 발견한다. 세계를 넓게 보면 유럽과 아프리카, 서유럽과 동유럽, 북미와 중남미 사이에는 정치적인 안정성, 경제적인 역동성, 개인의 자유와 기회와 인권과 환경에 있어서 그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한밤중에 한반도를 찍은 항공 사진을 보면 북한 전역에는 평양에만 조그만 빛이 비치지만, 남한은 거의 전역이 빛이다.
물론 잘 사는 나라들이 처음부터 잘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 선순환을 만드는 분기점이 있었고, 그 조그만 생명의 싹이 계속 자라면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내었다. 영국의 역사에서는 대헌장(Magna Carta, 1215년)이 하나 만들어지자 그 정신이 점점 발전하여 중세의 봉건제를 극복하고 근대에는 유혈혁명 없이 산업혁명과 민주주의를 선순환적 구조로 만들어갔다. 선순환은 열린 사회에서 가능하며 악순환은 닫힌 사회에서 이루어진다.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대부분 정치와 경제에서 배타적인 폐쇄 체계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질서를 향하여 나아간다.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개방 체계를 채택하는 순간 권력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심한 독과점과 억압 체계를 만들어 간다. 이리하여 처음에는 차이가 조금밖에 없었는데 갈수록 격차는 심화된다. 물론 실제적인 역사의 과정은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악순환은 악순환을 만들고 선순환은 선순환을 만든다.
새해에는 한국사회와 교회도 악순환의 고리를 하나씩 끊고 선순환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사실 한국교회는 끊어내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적지 않다. 뱀도 허물을 벗을 때 탈피의 고통을 경험하듯이 우리도 꼬여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고 할 때 끔직한 영적, 사회적 고통을 경험한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의 악순환을 끊고 선순환으로 전환한 경험들을 갖고 있다. 우리는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자신만 옳다는 지나친 과신을 매일 내려놓으며 세상과 소통하서 선순환의 세계를 스스로 열어 가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길 바란다.
(총신대 구약학 교수·한국신학정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