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노작가 반세기 분단 고민 고스란히… 장편 ‘판문점’ 출간 소설가 이호철

입력 2013-01-10 19:09


소설도 인격체처럼 운명이 있다. 현역 최고령 작가라 할 이호철(81)의 ‘판문점’(도서출판 북치는 마을)이 이에 해당한다.

함남 원산 태생인 그는 한국전쟁 때인 1950년 12월 단신으로 월남, 1955년 작가가 된 이래 1960년 9월 통신사 기자 신분으로 판문점을 취재하고 쓴 단편 ‘판문점’을 1961년 사상계 3월호에 발표한다. 주인공 진수가 판문점을 취재하다 만난 북측 처녀 여기자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전쟁 체험에서 막 벗어난 주인공의 심리를 ‘권태는 자유로부터 나온다’는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제7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52년이 지난 2013년 벽두에 이호철은 새로 집필한 후편 ‘판문점2’를 추가한 장편 ‘판문점’을 냈으니 가히 반세기 만에 전편은 후편을 만나 감개어린 회포를 풀었던 것이다. ‘판문점2’의 주인공 역시 진수지만 시점은 2012년으로 확 당겨진다. 이제는 팔십 노인인 진수가 당시 판문점을 함께 취재했던 친구 영호를 만나 당시와 현재의 분단 현실에 대한 북받치는 소회를 주고받는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샴쌍둥이처럼 전편과 짝을 이루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이를테면 소설이라는 것 한 편도, 그때그때 나름대로 숙명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싶고, 진수 자신의 그때그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저 어느 하늘이나 산천, 조상께서 은밀하게 도와준 측면도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24쪽)

“‘판문점2’의 직접적인 창작 동기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의 장례과정을 지켜보면서 받았던 충격”이라고 ‘후기’에서 밝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남북 간의 현실적 소통문제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제시한다. 반세기 전엔 판문점에서 소극적이나마 북측 여기자와 소통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불가능한 국면이라는 비판의식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북측 여기자와 진수의 대화가 수록된 전편의 내용을 후편에 재인용하고 있다.

“정치의 표준이라는 걸 어디다 두고 계시나요? 어느 특정된 개인의, 혹은 집단의, 감정적인 장애라든가, 타성에서 오는 고집이라든가, 우선 그런 것은 제거되어야 하지 않아요?”(27쪽) 북측 여기자의 당돌한 질문에 진수는 이렇게 응수한다. “당신들 세계에서 자유라는 건 어떤 모습을 지니는가요? 자유조차 혹시 강제당하는 건 아닌가요?”(27쪽)

1960년 9월에는 남북 간에 판문점에서 이런 정도로나마 사사로운 의사소통이 있었던 반면, 2012년의 현실은 아예 소통이 냉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19∼20세 젊은 세대, 세 명 중의 한 명인 32.5%가 꼭 우리 남북통일이 되어야만 할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런 건 필요 없다고 응답했다지 않는가.”(39쪽)

10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그는 “나는 이북 체제에서 살아봤기에 그 모순된 체제를 이해할 수 있다”며 “분단 문제를 다루고 있는 황석영 김원일 이문열 등의 소설도 실경험이 없어 성에 차지 않기에 내가 보는 남북관계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2005년 평양 남북작가대회에 남측 대표단으로도 끼지 않은 것은 북한에 작가다운 작가가 없다는 것을 나의 불참으로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그동안의 북한 권력 세습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김정은 세력이 백성들의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문학의 목표”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