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대나무 책부터 전문 책방까지… 2000여년 中 책의 변천사 더듬다
입력 2013-01-10 18:41
중국 출판문화사/이노우에 스스무/민음사
중국의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 공자는 ‘인과 예’를 가르친 유가의 거두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책의 문화사 측면에서 볼 때 공자는 어떤 존재일까. ‘춘추좌씨전’의 기록을 보자. 기원전 540년, 공자가 10세 무렵일 때였다. 진나라에서 노나라에 사신으로 온 한선자는 태사씨(太史氏·사관)에게서 책을 구경했다. 그는 ‘역상(易象·주역 관련 문헌)’ 등을 보고 주나라 문명이 노나라에 완전히 전해졌다며 감탄했다.
공자가 소년이던 시절, 옛 성현의 가르침은 이렇듯 ‘충분히’ 책으로 보급되지 못해 민간에는 책이 없었고, 관가에 있더라도 그 관청이 아닌 다른 관청에는 없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랬던 책의 요람기, 공자는 민간에서 학문과 교육에 종사했다. 공자를 두고 청나라 말기 사상가 장병린은 이렇게 칭송했다. “자손 대대로 관에만 있던 학문을 평민에까지 이르게 했다.”
일본 학계에서 중국 사상사 연구를 대표하는 이노우에 스스무(나고야 대학 교수)가 도도한 중국의 역사를 ‘책’이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춘추시대 책의 성립에서부터 당나라 때 인쇄책의 탄생을 거쳐 명나라 말기 책의 대중적 보급까지를 다룬다. 제목 그대로 2000년에 걸친 중국 출판문화사이다. 그간의 출판 문화사 연구가 종이와 인쇄술 보급 같은 문명사적 관점에 국한됐던 것과 달리, 저자는 책과 출판, 독서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는지를 조명해 울림이 크다.
묵직한 주제이지만,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서술해 일반인도 의외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후한 시대 왕화평은 죽을 때 100여권의 책을 남겼다. 이른바 개인 장서가의 출현이다. 하지만 100권이라는 숫자에 현혹되지 말라. 당시는 글을 대나무 조각에 쓰던 죽간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2세기에 나온 신선에 관한 책인 ‘태평경’은 170권에 달했다. 죽간에 이런 경전을 베끼면 수레 한 대에 다 싣기도 힘들었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후한 중기 채륜의 종이 발명이 인류 문화사에 끼친 혁명적 의미를 이해시킨다.
한(漢)의 멸망으로 제국이 사라진 뒤 문벌 귀족들 사이에 개인적 사상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고 불후의 작업으로서 저술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는 얘기, 남북조 시대에 책이 바둑 음악처럼 교양으로 등장했다는 얘기, 당나라 때 과거제도의 정착으로 책 수요가 늘면서 전문 책방이 등장했다는 얘기 등 시대에 따른 책의 변천사도 추적한다.
정부 정책이나 시대정신이 출판시장을 좌우하기도 했다. 예컨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정부 검열 정책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그 반작용으로 이후 들어선 통일 국가 한나라는 출판문화가 활짝 핀 시대로 칭송받는다. 그 유명한 ‘사마천’의 ‘사기’도 이때 집필됐다. 하지만 저자는 한나라 때의 저술과 출판은 유교 등 체제에 봉사하는 한도 내에서 장려됐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격물치지’ 정신을 추구한 송나라는 그 개방성으로 인해 출판시장의 번영을 가져왔다. 이 시대에도 맹자로부터 ‘아비를 몰라보는 금수의 책’으로 비판받은 묵자가 쓴 ‘묵자’는 금서였다. 따라서 15세기 중반 명나라 때 ‘묵자’가 비로소 간행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명 말에 가서는 배움이 아닌 쾌락으로서의 독서문화가 출현하며 서민에게도 학문이 개방된다. 면면한 출판의 역사야말로 인류가 표현·사상의 자유를 획득해가는 여정이었음을 저자는 말하는 듯하다.
종이 인쇄술 나침반 화약. 이것들은 중국의 4대 발명품이다. 이 중 두 가지가 책에 관한 것이다. 책의 역사에서 중국은 ‘위대한 선진국’이었다. 그럼에도 그간 출판의 역사 서술은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 등 서양 일변도였다. 중국 출판문화사 연구가 일천한 원인을 저자는 사료 해독 능력에서 찾는다. 서구인들에게 중국의 전통 문헌을 연구하는데 있어 언어적 장벽이 높았다는 뜻이다. 이 책을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인이 썼다는 건 새겨볼 일이다.
저자는 말한다. “중국 문헌은 그들보다 앞서 근대를 수용한 일본인에 의해 근대 사학의 일부로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그 역사는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출판문화사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말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주창하며 아시아 맹주로 부상한 역사를 가진 일본의 힘이 아직도 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동철 장원철 이정희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