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노벨상 수상 미리 알았다?… 슈바이처, 알고보니 전략가!
입력 2013-01-10 18:30
슈바이처/닐스 올레 외르만/텍스트
프랑스 알자스 지방(원래는 독일 영토) 출신으로 신학자·철학자·음악가·의사·신학자였던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 그에 대한 전기는 여러 국가에서 출간됐고 종수도 매우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명성에 걸맞게 칭찬 일변도의 전기들이다. 아마도 그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1960년 독일의 슈피겔지가 “그는 겸손하고 소심한 남자인가, 아니면 수염을 기른 쓰레기 수거인인가”라고 질문한 게 처음일 것이다.
엄밀히 말해 독일 출신인 슈바이처에 관한 독일어 전기가 한 권도 없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독일 태생의 윤리학 교수인 저자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집필을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슈바이처에 관한 수많은 의문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예컨대 슈바이처는 그 헝클어진 머리모습만큼이나 가식 없는 존재인가, 아인슈타인에서부터 흐루시초프를 거쳐 존 F. 케네디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주요 정치인·지성인·고위 관료와 서신을 주고받았던 슈바이처는 얼마만큼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인간일까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그는 슈바이처가 남긴 자서전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기록보관소의 문헌과 유고들을 통해 풀어나간다.
“슈바이처가 가식이 없지 않았으며 젊은 시절에는 외모에도 신경을 썼다는 사실은 그가 청소년 시절과 대학 시절에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보여주고 있다. 기차의 3등석을 이용해서 여행을 하고 해진 옷은 입고 점잔을 빼는 슈바이처의 모습도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398쪽)
슈바이처에게도 가식이 있었고 약점이 있었으며 의도된 연출을 즐기는 스타 기질이 있었다. 흔히 미국인들은 유럽에서 화려한 대학 교수로서의 출세를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헌신적인 의사가 된 그의 선구자적 정신을 경탄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이는 1905년 그가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시작했을 때 이미 대학에서 출세를 기대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평가라는 것이다.
1952년 슈바이처는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는 소식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는 몇 되지 않는 수상 후보자에 속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저자는 결과적으로 “이런 전략적인 기질과 실리적인 사고 등은 그의 대단한 장점이었다”고 지적한다. 슈바이처는 신학과 정신의학 연구를 통해 역사적인 예수에게서 확인했던 것과 똑같이 자신에 대한 숭배를 막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던 슈퍼 스타였다. 염정용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