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꽃값

입력 2013-01-10 18:40

“호서 상인의 모시는 눈처럼 새하얗고/ 송도 객주의 운라 비단은 값이 그 얼마인가?/ 술에 취해 화대로 주어도 아깝지 않은 건/ 운심의 검무와 옥랑의 거문고뿐이라네.”

조선 후기 밀양 출신의 선비 신국빈이 당대의 유명한 기생 운심의 검무를 보고 감탄해 쓴 ‘은천교방죽지사’의 한 구절이다. 화대(花代)는 기생, 창기(娼妓) 등과 관계를 갖고 그 대가로 주는 돈을 말한다. 꽃값, 놀음차, 해웃값, 해웃돈, 화채(花債)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는 “봉순네는 그녀가 노름꾼, 머슴들, 장돌뱅이를 가릴 것 없이 청하기만 하면 해웃값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라고 차마 알려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는 문장이 나온다. 김주영의 소설 ‘객주’나 이문열의 소설 ‘변경’에는 꽃값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대나 꽃값은 여자를 꽃에 비유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여자 제비족을 꽃뱀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낮고 경제활동이 제한됐을 때는 몸 파는 것이 일부 여성의 중요한 생계수단 중 하나였다. ‘영자의 전성시대’처럼 1970년대 영화나 소설에는 매춘부 여주인공이 가끔 등장한다. 연예인들이 재벌 회장에게서 화대로 수억원을 받거나 아파트를 얻었다는 풍문이 돌던 시절도 있었다. 2009년에도 신인 연예인 장자연씨가 정·재계 인사들에게 성 접대를 강요받았다며 자살하기도 했다. 윤락행위방지법을 강화한 성매매특별법이 2004년 시행됐는데도 성매매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독버섯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4단독 오원찬 판사가 그제 돈을 받고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 김모씨가 신청한 성매매특별법의 위헌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했다. 김씨는 지난해 7월 13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했다가 기소됐는데, 개인 간 성행위에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고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위헌소지가 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하지만 자발적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성매매가 더 활개를 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또 성매매 여성들의 처지가 딱하다고 교화로 다스린다면 장기를 판 사람들도 불쌍하다고 봐줘야 할까. 미국 저널리스트 해나 로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의 지배가 시작되고 ‘남자의 종말’이 다가오는데 언제까지 여성을 돈으로 사는 구 시대에 머물러 있을 셈인지 답답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