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민주통합당의 어느 풍경
입력 2013-01-10 18:48
민주통합당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127명이 보여주는 모습은 민주당의 현재와 어쩌면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일 수 있다. 그들을 제1야당으로 둔 국민들의 삶은 앞으로 어떠할까.
민주당은 간혹 당에 ‘큰일’이 생겼을 때 중진 의원 간담회를 연다. 그게 무슨 통과의례가 됐다. 그런데 그 중진 의원 상당수는 큰일이 생기기 전에는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이 다수다. 3선만 되면 중진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당내에서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하거나 또는 주류 지도부가 역할을 배제해 주변에서 그냥 맴도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조용히 국회의원 하는 것이다.
목소리가 큰 것은 초·재선 의원들이다. 얼마 전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장에서는 초·재선 의원들이 자주 언성을 높였다. 그들 중에는 의미 있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동반사적으로 ‘반대’에 길들여진 헛똑똑이 젊은 의원도 많다. 한 여성 초선 의원이 다른 여성 재선 의원에게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하지 맙시다”라고 소리치자 해당 재선 의원은 소리친 의원을 가리키며 “(당신이) 왜 총대를 메, 왜 총대를 메냐고”라고 맞고함을 질렀다.
초·재선 의원들이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사이 중진 의원 누구도 좌중을 정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거나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중진 의원들 사이에 친노(親盧·친노무현)계 이해찬 전 대표와 정세균 상임고문 등 대선 패배의 책임이 제기된 이들이 ‘투표권 행사’를 위해 맨 뒷자리에 쥐죽은 듯 앉아 있었다. 대선 이후 당의 지도급 인사들이 어떤 입장 표명이나 당원과 지지자들에 대한 사과문 같은 것도 없이 원내대표 선거장에 나와 있는 모습이 생경해 보였다.
정당 민주주의의 핵심인 당내 선거에 대한 의원들 간 불신은 극에 달한 지경이다. 지난해 1월 당 대표 선거와 6월 당 대표 선거, 9월 대선 후보 경선 어느 하나 깔끔하게 승복한 적이 없었다. 매번 공정성 시비로 얼룩졌다. 승복은커녕 주류 표현에 따르면 “9월 경선에서 패배한 비주류가 삐져서 당의 5년 내 가장 큰 행사인 12월 대선을 안 도와줬다”고 말한다. 그렇게 원망이 가득한데 3월쯤 열릴 전당대회에서, 또 5년 뒤 대선 후보 경선에서 비주류가 승리할 경우 주류가 아무 일 없었던 듯 도와줄 수 있을까.
멀리 쳐다볼 필요도 없이 지난 9일 비상대책위원장 선정 과정을 보면 된다. 선정 과정에서 누구는 되고 안 되고 찬반 논란이 거셌던 것은 물론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마지못해 추대했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새출발하겠다고 밝힌 이튿날인 10일에도 한 초선 의원이 방송에 나와 “다른 사람이 비대위원장이 됐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사실 대선 이전에도 계파 갈등이 있었지만 대선 이후에는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요즘 어느 자리에 가든 서로를 강하게 비난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같은 의총장에, 또 같은 당에 나란히 둥지를 틀고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다. 그렇게 몇 년간 ‘불편한 동거’를 해온 동안 지지층이 계속 떨어져나갔고 결국 대선에서도 졌다.
민주당이 정상화되려면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 일부 인사의 과감한 퇴진, 처절한 고해성사, 계파 간 진심어린 화해 등이다. 그게 안 되면 빨리 헤어지는 게 낫다. 제1야당의 혼란은 내부 혼란으로 그치지 않고 국민 삶에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단을 서두를 때다. ‘시끄러운 동거’는 국민만 힘들게 하니까.
손병호 정치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