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진원 (9) “적자경영 대한기독교서회를 살려주십시오”
입력 2013-01-10 18:52
젊었을 때 교계 어른들을 만나면 나는 늘 정순모 장로의 아들로 소개됐다. 아버지는 평신도였지만 영등포제일감리교회와 감리교단을 충심으로 섬기셨다. 내가 후일 감리교단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 데도 아버지의 영향이 없지 않았다.
아버지는 서른둘에 장로로 피택됐지만 주일학교 교사직을 천직으로 여겼다. 환갑이 넘어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교회학교 아동부 교사로 봉사했는데, 할아버지 선생님이 어린이 찬송을 부르며 성경을 가르치던 모습은 교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버지는 주일이면 누구보다 먼저 주일학교에 가서 예배실을 둘러보고, 교사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이들이 오면 인자하게 맞아주고, 벗어놓은 신발도 신발장에 가지런히 정리했다. 아버지는 “하나님은 목사에게 교회와 어른 성도를 맡기셨고, 교사에게 어린 아이들을 맡기셨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언제까지 주일학교 교사를 하실 것이냐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므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셔야만 그만둘 수 있다”고 답했다.
교회학교를 위한 아버지의 헌신은 교회 밖으로도 확대됐다. 1971년 감리교교회학교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돼 12년간 일하셨다. 72년에는 최초로 어린이찬송가를 발행했고 73년에는 제1회 어린이 성가경연대회도 열었다. 감리교단에서는 아버지를 71년부터 83년까지 12년간 CBS기독교방송의 재단 이사로 파송했다. CBS 부이사장을 거쳐 76년 11월에는 제8대 이사장으로 선출돼 2년 가까이 봉사했다.
95년 말쯤 감리교단에서 어려움에 처한 대한기독교서회의 사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아버지의 뜻을 좇아 감리교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수락했다. 96년 2월 열린 실행위원회와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출됐다.
‘왜 목사도 아닌 평신도에게 사장을 맡겼을까’ 궁금했는데 취임해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1890년 설립된 한국교회 최초의 연합기관으로서 기독교 정신문화를 선도해온 기독교서회였지만 50억원의 빚을 안고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적자의 원인은 간단했다. 기독교서회에는 경영이 없었다. 1년 매출은 50억원 안팎인데 직원이 무려 80명이었다. 더구나 출판산업은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적자가 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였다. 전임 사장이었던 김소영 목사님께 “왜 이렇게 직원이 많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이사님들이 자꾸 채용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거절을 못했습니다”라며 미안해했다. 인품 좋고 점잖은 김 목사님으로서는 딱 잘라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막막한 심정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기도 끝에 “너부터 먼저 행하라”며 솔선수범하라는 답을 받았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사도 바울도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였다.
나는 먼저 사장으로 있는 동안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법인카드도 사용하지 않겠다며 반납해버렸다. 나 때문에 다른 국장들도 법인카드를 쓰지 못했다. 사택은 임대료 받고 세를 주고, 관용차는 팔아서 영업용 트럭을 구입하게 했다.
직원들도 줄여야 했지만 회사가 어렵다고 그냥 해고할 수는 없었다. 기도하며 지혜를 구했다. 서회회관에 입주해있는 업체들이 떠올랐다. 입주사 대표들을 초청해 점심을 사면서 사정을 설명하고 채용을 부탁했다. 몇 차례 밀고 당긴 끝에 서회에서 일할 때와 같은 조건으로 채용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사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