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기록 없다”… 버려진 아이들 입양도 기피

입력 2013-01-09 22:01


“우리 아이가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난해 10월 5일 새벽 3시. 한 여성은 서울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 태어난 지 5일 된 딸 유정(가명)이를 버렸다. 이 엄마는 혼자 유정이를 낳았다. 유정이와 함께 발견된 편지에는 ‘여기저기 유정이를 입양보내려고 기관에 알아봤지만 법에 가로막혀 입양도 불가능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우울증까지 겪었던 이 여성은 “베이비박스가 아니었다면 아이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여성은 두 장의 편지에서 ‘아기에게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좋은 부모 밑에서 사랑받게 해 달라’고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유정이는 현재 서울의 한 보육시설에서 자라고 있다. 처음엔 잘 웃지 않던 유정이는 안정을 찾으면서 ‘미소천사’가 됐다. 볼살도 제법 통통하게 올랐고, 사람도 곧잘 알아본다. 이틀 전 백일이 된 유정이는 이 시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설 관계자는 “보육시설에서 아무리 사랑을 받고 자라도 가정집에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것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가정이 절실하지만 버려진 아이들은 친부모 신원이 없다는 이유로 입양에서도 차별받고 있다. 천사 같은 아이가 입양특례법 때문에 버려지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또 다시 외면당하는 것이다.

지난해 ‘베이비박스’를 포함해 서울시내에서 버려진 채 발견된 아이는 총 69명이었다. 그중 단 5명만 입양돼 양부모를 만났다. 개정 입양특례법 시행 후 성사 건수는 1건에 불과했다. 이 마저도 법 개정 전 입양 상담이 이뤄졌던 경우다. 나머지 아이들은 기약 없는 입양을 기다리며 보육시설에서 자라고 있다.

현행법상 유기 아동들은 시설 입소보다 가정 위탁이나 입양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입양될 수 있다. 하지만 입양 부모들은 대개 친부모 정보가 있는 아이를 원하기 때문에 입양기관을 통한 입양을 선호한다.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를 통해 보육시설로 보내진 유기 아동은 출생 정보가 없어 입양갈 기회가 더욱 적다는 것이다.

유기 아동을 보살피는 보육시설마다 입양에 대한 인식이 달라 시설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지기도 한다. 일부 보육시설은 파양됐던 과거 경험 때문에 입양을 아예 보내지 않는 곳도 있다. 이곳에 보내지면 평생 고아로 자라야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입양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아 여전히 ‘몰래 입양’을 하려는 이들이 많다. 아이 나이나 혈액형을 정하고, 심지어 자신의 외모와 비슷한 아이를 입양하길 원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법원에 가서 입양 절차를 공개적으로 진행하도록 하다 보니 양부모들도 입양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입양기관 관계자는 “버려진 아이들은 가뜩이나 입양이 어려운데 양부모 수까지 줄면 아이들이 새 가정을 찾는 일은 더욱 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