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열수] 국군 평화활동, 또 다른 20년을 향해
입력 2013-01-09 19:37
“품격 있는 국가 만드는 데 크게 기여… 외교·국방부 힘 합치고 법률 손질 해야”
벌써 20년이 되었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평화유지활동(Peace-Keeping Operations)을 구분하지 못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20년 동안 국군의 평화활동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유엔이 주도하는 PKO와 평화재건활동(PBO)은 물론 다국적군(MNF) 평화활동에도 참여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군 장병들은 세계 15개 지역에서 900여명이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었을 때, 추수할 인력이 모자랄 때,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무너졌을 때 장병들은 국민의 재산을 지키고 그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평상시의 애민정신이 파병지역에서도 빛났다. 평화와 안전을 위해 세계 각지에 파병된 장병들은 그 지역 주민들을 도와주고 그들이 재건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노력했다. 학교를 지어주고, 도로를 개보수하며, 문맹 퇴치를 위해 글을 가르치고, 빵 굽는 기술은 물론 컴퓨터 사용·수리 기술을 가르치며, 아픈 환자들을 지성으로 치료해 주었다.
그 결과 해당 지역의 주민, 공무원, 유엔 관련자, 현지 언론은 파병 장병들을 칭송했다. 그들은 장병들에게 ‘다국적군의 왕’ ‘신이 내린 선물’ ‘평화의 하얀 손’ ‘우리의 희망’ 등의 닉네임을 붙여주었다. 파병된 국군 장병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함에 있어서, 그리고 재건의 불씨를 살리는 데 있어서 어떤 국가의 파병 장병들보다 모범적이었기 때문이다.
파병 장병들의 이런 헌신으로 인해 한국은 품격 높은 중견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물론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위상, 주요20개국(G20)의 일원, 세계 유명 스포츠 행사 개최, 한류 확산 등도 한국을 소프트 파워와 품격 있는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한국이 더 이상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국가가 아니라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해, 그리고 저개발 국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나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국군의 평화활동은 전 세계에 한국을 국제질서의 종속자가 아니라 국제질서를 같이 만들어가야 할 동반자로 인식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이제 지난 20년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함께 미래 20년의 설계도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평화활동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대한 국방 협력으로 진화했듯 앞으로 어떤 진화가 기다릴지 모른다. 국군 위주의 평화활동이 대규모 경찰이 참여하는 형태로, 대규모 NGO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줄어드는 현역을 대신해 예비역이 참여하는 형태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소극적 평화활동을 넘어 전투 공군과 해군 함정, 그리고 육군 헬기부대 등이 참여하는 적극적 평화활동도 가능할 것이다. 세계의 중견국들은 이미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다.
평화활동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 현재 유엔 PKO 파병 업무는 외교통상부가, 다국적군을 포함한 그 외의 평화활동은 국방부가 담당하고 있는데 이것을 일원화해야 한다. 또한 유엔 주도의 PKO에 참여하는 것만을 고려해 2010년에 제정된 ‘UN PKO 파병법’도 손질해야 한다. 다국적군에 참여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을 손질할 때 예비역이 참여할 수 있는 길도 터놓아야 할 것이다.
국가급 평화활동 센터도 설립해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은 국가 차원의 평화활동센터와 군 차원의 센터를 따로 운영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군, 경찰, 선거관리위원, 소방대, 공무원, NGO, 분쟁지역에 파견되는 방송 및 기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자료를 축적한다. 군 센터는 군에 필요한 특수 교육만을 담당한다.
평화활동 참여 20주년을 맞아 굵직한 행사도 필요하다. 그동안 평화활동에 참여했던 전·현역 장병들을 파병부대별로 초청해 위무할 필요도 있고, 국내외 세미나를 개최해 지난 20년에 대한 평가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파병 장병들에 대한 치하와 함께 국방부, 외교부에 기대를 걸어본다.
김열수 성신여대 교수 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