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병원 고를 때 알아야 할 것들

입력 2013-01-09 19:37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알면 진실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니 진실로 보게 된다’는 뜻이다.

조선 정조 때 사람 유한준(1732∼1811)의 글 ‘석농화원발(石農畵苑跋)’에 나오는 구절이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인용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유 교수는 이 구절을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 알면 보이게 된다’는 표현으로 고쳐 사용했다. 문화유산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 말은 또한 의료에도 적용될 수 있다. 병원의 생리를 알아야 이용 시 불편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경중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빅5 병원’만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큰 병원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흔히 큰 병원이 좋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평균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일 뿐이다. 규모가 커야 좋은 병원이고, 모든 병을 잘 고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국내 의료기관은 의원과 병원, 종합병원, 대학병원으로 구분된다. 규모가 다른 만큼 기능도 각기 다르다.

한 예로 많은 사람이 찾는 큰 병원 명의의 경우 장시간 대기 후 ‘3분 진료’에 그쳐 되레 실망하기 쉽다. 잔뜩 밀린 대기 환자에 치여 외래 환자 진료 시 마주앉은 환자와 눈도 못 맞춘 채 컴퓨터 모니터에 뜬 혈액 및 영상의학검사 결과를 읽고 해석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짧아도 며칠 또는 몇 달 이상 기다린 끝에 가까스로 진료를 받는 환자 입장에선 그야말로 복장 터질 노릇이다.

그래도 큰 병원을 꼭 찾아야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진단이 불확실한 경우나 흔치 않은 병, 흔한 병이라도 합병증이 생겼거나 종합병원 아래 수준의 1∼2차 의료기관에서 치료가 잘 안 될 때다. 큰 수술과 장기간의 집중치료를 필요로 하는 중병일 경우에도 큰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다만, 이때도 버려야 할 게 있다. 응급실을 경유하면 큰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기가 쉬울 거라는 생각이다.

병이 났을 때 국내 최고 수준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은 것은 사실 모든 이의 바람이다. 그러나 심근경색증, 뇌졸중 등과 같이 생명은 물론 후유장애를 최소화하는데 무엇보다 빠른 응급처치가 중요한 중병일수록 큰 병원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국내의 큰 병원은 같은 응급실 안에서도 위중한 환자부터 우선 진료해야 한다는 원칙이 무의미할 정도로 늘 초만원 상태다. 아무리 늦어도 3∼6시간 이내에 치료를 받아야 할 응급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 응급실 복도에서 대기하는 모습은 실로 안쓰럽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큰 병원을 고집한다.

이럴 땐 비슷한 수준의 응급의학기술을 가진 다른 병원을 찾는 게 낫다. 여기서 실명을 대긴 그렇지만, 빅5 병원만큼 크지 않아도 병실 사정이 나쁘지 않은데다 안심하고 응급환자를 맡길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이는 현재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과 의료진이 미덥지 못해 중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싶을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응급실은 응급 환자에게 최우선적으로 입원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지만, 이 또한 수술실과 병상에 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입원 치료 중 병원을 옮길 때는 무엇보다 치료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환자를 보내고 받는 두 병원 간 사전 조율이 필수적이다. 이송(移送) 또는 전원(轉院)을 원하는 환자 측은 새 병원에 관련 전문의가 있는지, 빈 병상이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반드시 확인하고 주치의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칫 환자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후속 처치도 늦어져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