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층 高空 강풍에 휘청, 손발 감각도 사라져… 인부들 “일감 걱정에 마음이 더 춥죠”

입력 2013-01-09 19:25


9일 새벽 서울 아침기온 영하 10.2도. 다시 한파가 찾아왔다. 이날 새벽 4시부터 서울 신설동의 인력사무소에 나와 있던 황준식(56·가명)씨는 걱정이 앞섰다. 지난 연말과 연초 한파 때문에 건설공사가 중단된 곳이 많아 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은 일이 있다. 보름 만이다. 황씨는 함께 차출된 김진국(55·가명)씨와 오전 6시50분 서울 대흥동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을 찾았다.

신규 직원 교육을 받기 위해 현장사무실로 들어선 두 사람의 얼굴에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겨울철 건설 현장에서 뇌나 혈관 질환 환자들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 일에 들어가기 전 의무적으로 혈압을 재야 하기 때문이다. 황씨는 “여태까지 이상이 없었는데 괜히 오늘 높게 나오면 일을 못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정상 수치였다. 국민일보 기자는 안전교육까지 마친 이들과 함께 폐자재 수거 및 현장 청소를 하기 위해 아파트 6개동 중 한 곳으로 향했다.

리프트를 타고 꼭대기인 25층에 도착하자 바람이 한층 거세졌다. 아파트 안 한쪽에는 얼마 전 들이닥친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었다. 내부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창이나 문이 달려 있지 않았다. 한 층은 110㎡짜리 3∼4가구로 구성돼 있었다. 방진마스크와 헬멧 등 장구를 갖추고 구역을 나눠 못쓰는 철근, 벽돌, 못 등을 자루에 담았다. 빗자루로 바닥을 쓸 때마다 시멘트 먼지가 눈앞을 가렸다. 23층의 외부 베란다 청소 중 세찬 바람이 불었다. 먼지는 더 심하게 날렸고, 몸은 덜덜 떨렸다. “어이 이사야씨! 정신 바짝 차려, 안 그럼 다쳐.” 추위와 먼지 탓에 몸을 뒤뚱거리자 현장감독을 나온 박형목(60·가명)씨가 소리쳤다. 곳곳에 못과 잘린 철근 등이 즐비해 부상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과 발끝에 감각이 없어져갔다. 22층에서 창틀에 나사를 박고 있던 정모(34)씨는 “오늘같이 추운 날에는 나사나 철근을 잡으면 손에 붙어 잘 안 떨어진다”고 말했다. 폐자재와 시멘트가루로 가득 찬 자루를 하나 둘 옮길 때마다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겨우 오전 작업을 마치고 현장 내 식당으로 들어서자 추위에 얼굴이 빨개진 인부들로 가득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일터로 향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황씨와 김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올해로 일용직 노동자 생활 20년째라는 김씨는 “아내는 가사도우미하며 남의 집 청소하고, 나는 공사 현장에서 남의 집을 청소해 준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언제 이런 집에서 살아보겠냐”며 씁쓸히 웃었다. 황씨는 “내일 일거리가 없을까봐 더 걱정”이라며 “몸보다 마음이 더 춥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