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임기 말 무분별한 특별사면은 대통합 해쳐

입력 2013-01-09 19:17

이명박 대통령이 설을 전후해 임기 중 마지막 특별사면을 단행키로 하고 대상과 기준을 정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경제계·노동계 인사는 물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고려대 동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이 검토 대상에 올랐다는 소식이다. 특별사면이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긴 하지만 남발할 경우 국가법질서 확립에 금이 갈 것은 분명하다.

사실 사면권은 군주국가시대 군주의 은전권(恩典權)에서 비롯된 구시대의 유물로 사법권 독립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해 놓고는 몇몇 사람에 대해 형을 집행하지 않거나 면제해 주는 것은 법 앞의 평등이란 민주주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특히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을 어긴 사람에게 특혜를 줄 경우 일반 국민들의 준법의식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할 때에도 대법원장의 의견을 듣거나 별도의 사면심사위원회를 둬 엄격한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형식상의 자문기구인 사면심사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이 때문에 특별사면이 단행될 때마다 국민들의 따가운 질책이 있어왔다.

문제는 이 같은 국민적 원성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은 임기 말에 예외 없이 조자룡 헌 칼 쓰듯 사면권을 남용했다.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부패나 비리에 연루된 측근들을 한꺼번에 풀어주고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대통령 임기도 다 지났으니 수족 같았던 자기 부하들에게 인심이나 실컷 쓰고 가자는 심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고리를 끊어야 할 때도 됐다.

만약 이번에 특별사면이 단행된다면 이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의 양해 아래 결단을 내릴 것이다. 박 당선인은 그동안 부패와 비리의 성역 없는 수사와 처벌을 강조해 온 것은 물론 대통령 친·인척 및 특수관계인 부패방지법을 공약한 상태다. 따라서 설사 이 대통령이 특별사면 단행을 시도할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만류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새 정부 출범에 앞서 법질서 수호의지를 명확히 밝히고 재임 중 특별사면은 절대로 없다는 방침을 천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비슷한 범죄를 저질러 수감되고도 권력 핵심부와 끈이 닿은 사람은 풀려나고 장삼이사는 차가운 방에서 영어의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무슨 대통합인지 묻고 싶다. 오히려 특별사면은 과거 힘깨나 썼던 인사들만 구제받는 꼴이어서 국민들 사이에 위화감만 조성시킬 뿐이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함부로 남용할 경우 두고두고 원성을 살 것이란 점을 분명히 인식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