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민룡] 조임과 풀림이 조화된 대북정책을

입력 2013-01-09 19:24


2013년 새해 첫날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신년사를 육성으로 발표했다. 김일성 리더십의 모방이다. 주목해야 하는 사안은 김정은이 단지 상징조작의 방편으로 김일성을 따라 하는지, 아니면 김일성 통치 시기의 국가정책 방향도 답습하기를 원하는지의 여부이다. 특히 후자의 가능성에 더 주목하는 것은 김일성이 주민생활 여건의 개선에 더 역점을 뒀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군대를 앞세워 권력 입지를 다지고, 핵무기와 미사일 등 전략무기 개발을 국가시책으로 추진했다면 김정은은 어떤 시책에 역점을 둘 것인가. 신년사에서 강조되고, 북한 당국도 인정한 것처럼 ‘경제강국 건설’을 추진할 것인지가 관심사이다. 김일성은 생전에 ‘이밥에 고깃국’을 주민들에게 먹게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김정일 시기에는 더 악화됐다. 북한경제는 위기상태라고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에 있다.

주민들이 기근과 만성영양결핍이라는 비극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경제회생은 김정은이 아닌 다른 사람이 북한을 통치하더라도 국가 제1시책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기아와 기근 해소를 위해 결성된 세계식량계획(WFP)의 구호활동이 이뤄지는 세계 60여개 국가에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들 국가 중에서도 최악의 여건에 있는 22개 국가에 속해 있다.

김정은이 경제회생에 역점을 둔다면 가시적 성과를 위해 정치와 외교 측면에서 자세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미국에 대한 비난 강도가 줄었고, 한국을 상대로 대화의지를 표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김정은의 권력입지 안정성 여부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안팎의 현실은 이전보다 훨씬 어렵다. 김일성이 북한식 사회주의체제를 구축했고 김정일이 전략무기 개발을 통한 ‘강성대국’ 건설에 기여했다면 김정은은 과연 어떤 기여도로 정권을 안정시킬지 의문이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모두 정상적으로 권력을 이양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체제에서도 부자세습은 유례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3대 권력세습을 이어가야 하는 김정은으로서는 선대보다 정권의 불안정성을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이 모험적이고 돌출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새 정부는 대북정책 수립 시 다음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우선 상호 신뢰구축과 교류협력의 물꼬를 터야 한다.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 적십자 회담을 통한 인도주의적 교류를 이어 나가야 한다. 현재와 같은 대치상황은 한반도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정치적 흥정에 의한 ‘통 큰’ 지원은 자제해야 한다.

교류협력의 수준과 범위는 한국의 국가안보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적절한 선에서 조율돼야 한다. 한국에서 북한으로 유입되는 외화들은 전략무기 개발에 투입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느 정도가 적절한 선인지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새 정부는 균형 잡힌 접근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지도층은 식량을 포함해 과도한 지원을 우려할 수도 있다. 북한은 우리의 풍요로운 지원이 주민들의 의식을 약화시키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번 정부가 북한에 ‘원칙 있는 교류’를 강조해 경직된 남북관계가 지속됐다면 새 정부는 과도하게 경직된 부분을 풀면서도 방만하지는 않는 조임과 풀림이 적절히 조화된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민룡 교수(숙명여대 안보학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