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트라우마’에 갇힌 중소기업… 환율 추락에도 기본적 위험회피 상품조차 외면
입력 2013-01-09 19:04
“지금 중소기업들은 마치 달궈지는 냄비 속 개구리 같습니다.”
9일 한 시중은행의 외환파생상품 담당 부장은 ‘키코(KIKO) 트라우마’에 갇혀 환 헤지(hedge·위험회피)를 미루는 중소기업 처지를 이렇게 비유했다. 그는 “최근 환율이 1060원선까지 내려왔는데도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율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며 “이러다 깨닫기도 전에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키코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환율이 급등하면서 중소기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던 통화옵션상품이다. 100여개 중소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지난해 8월 은행이 피해액의 60∼70%를 배상하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나왔었다.
‘키코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중소기업들은 최근 선물환 등 기본적 환 헤지 상품조차 외면한 채 환율 급락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중소기업의 환율 피해를 막을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선물환 거래 규모는 2011년 3분기 82억6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3분기 63억7000만 달러로 23%나 감소했다. 선물환은 미래 특정 시점에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외국돈을 사고팔겠다는 약속이다. 환율 등락에 따른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상품이다.
선물환 거래량은 2011년 4분기 이후 70억 달러 규모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2분기에서 3분기 사이 8억 달러가 줄었다. 특히 환율 하락에 대비하는 선물환 매도량은 지난해 2분기 246억 달러에서 3분기 122억 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지난해 2분기에서 3분기까지 원·달러 환율(종가 기준)이 1163.61원에서 1123.67원으로 40원 가까이 떨어졌지만 기업들은 아무런 대비가 없었던 것이다.
선물환 거래 급감은 환율시장의 ‘큰손’인 조선업계의 불황 탓도 있지만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를 꺼리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가 112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65.1%가 “여건상 환율 리스크 관리를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선진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내고 있어 환율 하락세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또 외국인 투자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은 언제든 환율이 급등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과 기업 모두 적극적으로 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준구 진삼열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