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인수위원-기자들 ‘출근길’ 전쟁
입력 2013-01-09 20:13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둥지를 튼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선 아침 출근시간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함구령 탓에 인수위원들은 기자들을 피해 다니고, 그래도 한마디 들으려 기자들은 그들을 쫓아다닌다. 안종범 고용복지분과 위원은 9일 출근길에 “일부러 (기자들 피해) 늦게 왔는데 마찬가지네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회의는 오전 9시였는데 안 위원은 9시10분에 나타났다.
인수위가 철통보안을 강조하면서 위원들은 입을 ‘밀봉’했다. 취재진 전화를 받지 않는 건 다반사고, 그나마 평소에 안면 있는 기자들에겐 “형편이 여의치 않다.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아예 전화를 비서에게 맡겨버린 이도 있다. 이렇다 보니 유일하게 인수위원들을 만날 수 있는 출근길에는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도 기자들이 진을 친다. 그러나 위원들은 “잘 모른다” “드릴 말씀이 없다” 정도의 답변으로 넘어간다. 도망치듯 사무실로 뛰어 들어가기도 한다.
소신 발언을 이어가던 김장수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도 이날은 특별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 취재진이 “공약대로 군 복무기간을 단축하는 거냐”고 묻자 흘끔 쳐다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틀 전 기자들을 피해 뛰다가 신발이 벗겨졌던 김현숙 여성문화분과 위원은 “(그때) 도대체 누가 신발을 밟았어요?”라며 멋쩍게 웃으면서 사무실로 향했다.
‘기자 피하기’ 신종 기법도 등장했다. 홍기택 경제1분과 위원은 빵모자에 청바지 차림으로 귤을 한 봉지 사들고 나타났다. 취재진에게 귤을 나눠주기까지 했지만 낯선 옷차림과 너무 여유 있는 모습에 아무도 그가 인수위원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한 기자가 “혹시 홍기택 위원 아니시냐”고 물었지만 그는 “홍기택이 누구야”라고 반문한 뒤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연일 해프닝이 벌어지는 인수위를 향해 새누리당에서조차 불통(不通)이란 비판이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부쩍 기자들에게 친절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브리핑 도중 “제 발언 속도가 (노트북으로) 받아치기에 적절하냐”고 묻기도 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