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진원 (8) “새마을금고 파산 막자” 금싸라기땅 9000평 내놔

입력 2013-01-09 18:27


정치를 하자는 제안은 뿌리쳤지만 나는 원래 부탁을 받으면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이 때문에 능력도 없으면서 이런 저런 일을 많이 맡았다. 많을 때는 현직만 16개에 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돈을 쓰는 자리였고 봉사하는 자리였다.

이렇게 맡은 자리 중 하나가 지역 새마을금고 이사장이었다. 80년대 중반 주민들의 부탁으로 설립초기단계였던 새마을금고를 맡았다. 새마을금고라 해도 별도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동사무소 한쪽에 책상 놓고 일하던 시절이었다. 이사장이라고 해봐야 비상근인데다 사무실이나 책상도 없어 명예직에 가까웠다.

그런데 미혼의 젊은 여직원 한 명이 못된 남자의 꾐에 넘어가 공금에 손을 대고 자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사고 소식이 알려지면 예금을 인출하려는 주민들이 몰려들어 새마을금고가 파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돈을 맡긴 서민들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여직원의 가족으로부터 피해액을 보전받을 수 있을까 해서 집으로 찾아가봤지만 가정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허름한 집에서 점을 보는 무속인이었다. 피해 배상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여직원에게 몹쓸 짓을 하고 돈까지 빼돌린 남자가 근처 사무실의 유부남 모씨라는 짐작이 갔지만 증거가 없었다.

결국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피해액을 변제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약국을 통해 버는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버지께서 천안에 사두었던 임야 9000여평을 팔았다. 아버지가 허락하시면서도 무척 속상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단국대 천안캠퍼스 근처라 그대로 뒀더라면 지금쯤 귀하게 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까운 사람목숨 잃고, 평생 모은 것보다 더 큰 재산을 잃었으니 충격이 컸다. 아버지께도 큰 불효를 했다는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마음에 병이 생겨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 한두 달 만에 체중이 수십 킬로그램이나 빠져버렸다. 엎드려 울면서 기도했지만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가슴 속에선 미움과 원망만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날 괴로운 마음에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 눈앞이 환해지면서 눈이 부셨다. 누군가 달려오며 “하나님 음성 들린다”고 소리를 쳤다. 신기하게도 달려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신발 몇 켤레만 보였다.

그러다 깼는데 밤새 흘린 눈물로 베개는 흠뻑 젖어있었다. 그때 살던 집 바로 뒤에 신풍감리교회가 있었는데, 새벽 종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가슴 밑바닥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주 깊은 한숨이 나오더니 몸이 공중에 뜨는 것처럼 가벼워졌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제도, 치료법도 없는 마음의 병으로 다 죽어가던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어려운 시간 시간마다 나를 붙들어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찬송가 413장(통 470) ‘내 평생에 가는 길’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교회로 달려가 참회와 반성의 기도를 드렸다. 목숨도 재산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집착하고 욕심내고 아까워할 일이 아니었다. 이후 완전히 회복해서 새벽기도도 열심히 다니고 전 교인들 앞에서 간증도 했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