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 농장’ 설립 원경선 옹 별세… 유기농 도입 빈곤퇴치에 헌신한 ‘생명 농부’
입력 2013-01-08 19:57
한국 유기농업의 아버지이자 빈곤퇴치에 일생을 바쳐 온 ‘생명농부’ 원경선(사진) 풀무원농장 원장이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0세.
원 원장은 지난 2일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면서 경기도 부천 순천향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이날 오전 1시49분 숨을 거뒀다.
원 원장은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에 부친이 별세하면서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든 그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55년 경기도 부천에 땅 1만평을 개간해 ‘풀무원 농장’을 마련하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해 자기 재산을 모두 내놓아 공동체를 설립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전도하는 농부’를 자처한 원 원장은 “농장에 들어온 식구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농사일로 풀무질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라는 뜻에서 풀무원이란 이름을 붙였다.
76년 경기도 양주로 농장을 옮긴 후 국내 최초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을 시작하면서 한국 최초의 유기농민단체 ‘정농회’를 설립했다. 이후 기아문제와 환경운동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89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창립의 초석을 마련하고 빈곤 타파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옳다고 믿는 건 어떤 위협이 있어도 지키는 삶을 살았다. 원 원장은 61년부터 2000년까지 ‘열린 교육’으로 잘 알려진 경남 거창고등학교 이사장을 맡았다. 거창고는 군사정권시절 교육당국과 마찰을 빚으며 세 번이나 폐교 위기에 처했지만 원 원장이 “타협하느니 차라리 학교 문을 닫는 것이 인격적으로 바른 교육이 된다”며 버텼던 일화로 유명하다.
2004년부터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새로 일군 풀무원농장으로 거처를 옮기고 농장 인근에 평화원 공동체를 세워 한평생의 꿈인 공동체 운동을 지속하며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일평생을 바쳤다.
원 원장은 유기농을 통해 환경보호와 보존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92년 녹색인상, 95년 유엔 글로벌 500상, 97년 국민훈장 동백장, 98년 인촌상을 수상했다. 풀무원은 원 원장의 이웃사랑과 생명존중 정신을 기리기 위해 풀무원 연수원 ‘로하스 아카데미’ 내에 원 원장 기념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유족으로는 81년 풀무원식품을 창립한 원혜영 민주통합당 의원을 비롯해 혜석(미술가), 혜옥, 혜진, 혜주, 혜덕, 혜경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이며 영결식은 10일 오전 9시에 열린다. 장지는 인천시 강화군 파라다이스 추모원이다(02-3410-6915).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